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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리뷰

정의란 무엇인가?(8강) / 마이클 샌델 :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아리스토텔레스)

by onyuan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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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 핵심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텔로스(telos: 목적, 목표, 본질). 두 번째는 정의는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이해하는 관건은 바로 이 둘의 무게와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누구에게 얼마나 줄지 결정하려면 누군가의 행위나 만든 제도가 원래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좋은 플루트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줘야 할까? 플루트는 연주에 필요한 악기이므로 플루트를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플루트를 선사해야 한다. 연주자의 집안 배경, 재산, 학벌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권리도 마찬가지다. 누가 시민권을 가져야 할까? 군사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인가, 부와 지혜를 가진 사람인가? 기준을 정한다면 정치 공동체의 목적에 달려 있다. 부자들은 부유함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정치인을 원할 것이며 안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군사적 능력을 갖춘 자를 원할 것이다. 이렇게 철학, 복지, 문화 등 각각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인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칸트, 롤스와는 다르게 정의와 선을 깊이 연관시킨다. 무엇이 정의로운가는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고려해야 하며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의는 단순하게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목적론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각 영역에서 목적을 정한 뒤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폴리스에는 분업이 필요하며 누군가는 기계적으로 단순한 노동을 계속해야 나머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해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자유인으로 타고난 사람이 있다면 노예로 타고나는 사람도 있으며 주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나은 사람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는 결국 소속된 공동체,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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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정의란 인간이 이룬 집단, 공동체가 유지되고 번영하는데 이로운 것이다. 절대적 선, 절대적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우주의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특별한 이유도 명분도 없이 생긴 우주, 뭔가 거창한 의미와 지향하는 바도 없는 그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닐까? 우주라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은하계, 항성, 행성들... 이것들의 존재 이유가 반드시 있기를 바라고 그 목적 또한 선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건 우리의 소망이자 바람이 아닐까? 때 되면 폭발하고 생기고 돌고 충돌하고... 뭔가 조건이 갖춰지면 행성, 항성과는 조금 다른 존재들이 생겨나고 조건이 달라지면 사라지고...

  우리가 관측 가능한 주변 항성과 행성들에서는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 없다. 우리가 사는 행성을 다녀간 우주인에 대한 정보도 모호하다. 미국에서는 확실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힐러리가 대통령 후보 때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알고 있는 우주인에 대한 정보를 지구인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는 것을 보면...)

  그 외계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까? 그들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까? 우주라는 공간은 어떤 공간에 의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우주의 시스템과 물리 법칙은 무엇에 의해 결정된 것일까?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이 끝없는 질문, 질문을 던지면 더 큰 질문이 되어 돌아와 버리는 상황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가?

 

  인간 사회 안에서의 정의, 그것은 결국 분배의 문제이며 누가 무엇을 더 가지느냐, 덜 가지느냐를 결정하는 것 같다. 분명 불평등하게 나뉠 텐데 덜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불만이 없는 것, 그것이 정의인가?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며 알맞은 지점을 찾는 것인가?

사회적 불평등 지수가 높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며 불평등한 대우가 인생에 걸쳐 폭포수처럼 나에게 쏟아져 내려도 그저 온 몸으로 견딜 뿐 한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쩌다 힘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꿔 보려는 시도로 폭발은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무기력함만 느낄 뿐.

  우연히 눈을 떠 보니 살아가야 한다고 하고 살아가야만 할 것 같고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이끌어 죽을힘을 다해 견디며 살아는 가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자연의 힘 앞에 연약한 모습만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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