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역사상 최대의 사기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이주를 시작한 후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호주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들은 도착한 곳에 사는 야생식물을 채취했으며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약 1만 년 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숲과 들판을 다니던 사피엔스의 삶이 완전히 달려졌습니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인류는 작물을 키우는데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9000년 경에는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가축화하였으며 8000년 경에는 완두콩, 5000년에는 올리브나무, 3500년 경에는 포도 재배를 시작하였고 4000년 경에는 말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농업혁명의 시기,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 한 밀,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 등의 식물이 오늘날까지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한때 학자들은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 농업이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믿었으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농업이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났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배와 가축화가 가능한 동식물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종이 서식하는 특정 지역에서 농업혁명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수렵채집의 삶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을 두고 위대한 도약, 진보라고 생각하며 인류 발전의 역사의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여겨 왔습니다. 인류는 점점 지식도 쌓고 지능도 높아지면서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게 되어 여러 가축을 키우고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스파르타와 같은 수렵채집의 삶을 끝내고 스스로 풍요로움을 생산해 내는 삶으로의 전환을 이룩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농업혁명 시대의 사람들이 더 총명해졌다는 증거도 없으며 더욱 안락한 삶이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수렵채집인의 삶을 살 때 더욱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갔고 질병과 기아의 위험도 적었다는 것입니다. 농업을 시작한 후 인구는 폭발했지만 농부는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해야 했으며 더욱 열악한 먹거리와 삶을 살았습니다. 인류가 자연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재배한 농작물이 인간을 길들였습니다. 농업을 시작한 지역의 사람들은 동 틀 무렵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재배하는 식물을 위해 노동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밭의 자갈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고 재배하는 식물을 위해 잡초를 뽑는 헌신을 매일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배하는 식물을 주식으로 삼는 동물을 쫓아내야 했으며 해충을 막아줘야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물을 제공해 주고 땅에 영양을 공급해줘야 했습니다. 농업의 시작과 함께 인간의 몸과 삶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혜택으로 인류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더 나은 식사를 제공받지도 못했고 다양한 음식을 먹지도 못했습니다. 재배한 농작물을 추수하기 전에 비가 오지 않거나 너무 많이 내려 모든 것을 잃기도 했으며 메뚜기 떼와 곰팡이가 농작물을 감염시키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죽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불사했는데 강력한 적의 위협이 발생했을 때 수렵채집인들은 위험하고 힘들지만 다른 장소로 이동해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고 다른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경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침략한 강력한 적 앞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하다가 죽거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폭력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였습니다. 도시, 왕국, 국가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폭력을 통제하게 되었지만 수천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사이 자유롭게 살던 인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으며 짐승과 유사한 취급을 받으며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치라는 덫
인류는 농업이 많은 유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치명적인 계산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 매일 내일을 걱정해야 했고 이동해야 했던 수렵채집인들은 정착하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농업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풍요로운 삶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정착한 삶은 인구를 증가시켜 생산량이 증가해도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동해야 하는 수렵채집의 삶에서 돌봐야 하는 아이는 큰 짐이었기에 많은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이며 식량을 저장해 둘 형편이 아니었기에 인구의 증가는 공동체 전체에 위협이 되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적정한 인구를 유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업을 시작하면서 정착한 인류 공동체는 이동의 부담도 줄어들고 생산과 저장 능력이 높아지면서 아이를 많이 낳게 되었고 그 책임을 부담했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힘겨워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농경 생활을 계속한 이유는 이미 시작된 농경 생활에 길들여진 인류는 다시 옛날 삶의 방식으로 회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착생활로 인해 늘어난 인구 증가는 다시 수렵채집의 삶으로 돌아갈 다리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한 번 길들여진 농경 생활의 사치는 필수품이 되었고 그 삶을 당연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일부러 농업혁명을 구상했거나 이것에 의존한 삶을 살도록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좀 더 안전한 삶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결과가 그리 된 것입니다.
신성한 개입
농경사회로의 전환이 순수하게 경제적 필요에서였을까? 1995년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지역에서 기원전 9500년 경 건축한 유적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적지는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실용적인 목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유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이 투입 되었을 것인데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구조물에 이렇게 큰 노력을 기울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인간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종교적 신앙과 이데올로기 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며 이 유적지를 건설하는데 동원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농경지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적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카라사다 그 언덕이 밀의 변종 중 하나인 외알밀이 최초로 경작된 곳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서로가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렵채집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종교는 많은 수의 수렵채집인들을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종교 건축물을 만들게 하는 힘을 부여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였으며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해 나갔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업혁명의 희생자들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희생된 동물들이 나타난 것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기꺼이 소개합니다.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고 가죽과 같은 필수품들을 제공받으며 노동력까지 얻을 수 있는 동물들이 주된 희생자였습니다. 닭, 염소, 양, 소, 돼지, 말, 나귀 등의 동물들은 가축화 되어 갔고 호기심과 공격성이 강한 종류들은 먼저 도살되어 점차 순하고 말 잘 듣는 이들만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축들은 꽤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채찍과 멍에를 쓰고 끊임없이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공격성을 억제하기 위해 거세를 시켰으며 코를 자르거나 뚫었고 아주 좁은 곳에 가두었습니다. 고기를 제공한 가축들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도살되었습니다. 굳이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까지 오래 살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찍 도살되었습니다. 우유를 얻기 위해 새끼를 낳게 한 다음 새끼는 바로 도살해서 고기로 먹고 우유는 가능한 오래 짜낸 뒤 다시 임신을 시켰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가축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합니다. 멸종된 동물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들의 생존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인류의 업적과 성공 뒤에도 누군가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로 향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났고 농업사회에 길들여진 인류는 과거의 삶의 형태로 돌아갈 길을 잃었습니다. 기원전 1만년 경 지구에는 5백~8백만 명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기원전 1세기 경 인구는 2억 명을 돌파했으며 이 중 수렵채집인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1백만~2백만 정도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전체 육지 면적의 2% 정도에 몰려 살았습니다.
수렵채집 시대에도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장기 계획도 세우고 염려도 있었겠지만 농업사회에 들어서면서 미래는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계절을 놓쳐서는 안되기에 항상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했으며 비가 오는 시기를 잊지 않아야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뜻밖의 가뭄과 홍수, 병충해에 대비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시간을 농사를 짓는 행위와 더불어 날씨와 계절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삶은 더욱 바빠졌고 스트레스 또한 높아져 갔지만 이들의 삶과 잉여 재산은 그리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평등보다 위계질서, 신분의 차등이 생기면서 많은 잉여재산은 소수에게 돌아갔으며 새로운 수송기술이 더해지자 공동체의 규모가 커졌고 도시, 왕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자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권력과 부를 차지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생산된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피지배층에게는 겨우 연명할 정도의 식량만을 허락했으며 그 외 남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왕궁, 사원, 기념물을 짓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작은 무리에서 진화해 왔다가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 몇천 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규모의 인구가 협력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진화하는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부족함을 잘 메워준 것이 바로 신화입니다. 신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농업혁명으로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등의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결속이 필요했고 이를 해결해 줄 공통의 믿음과 신앙, 신념이 필요했습니다.
기원전 2250년 경 사르곤 대제는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를 건국했으며 이후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와 같은 거대 제국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다스렸고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렸습니다. 기원전 221년 아시아에는 진이 중국을 통일하며 거대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1세기에는 로마가 지중해를 통일하고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인류가 협력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아름다운 역사로 인식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착취와 억압, 폭력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말 한 마디면 1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한 농부의 전 재산이 빼앗기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고 전쟁에 끌려 나가 목숨을 잃었으며 평생을 건축을 위해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신화가 무엇이었길래 제국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요? 신이라는 존재를 믿게 만들고 그 신의 아들이 왕이 되었거나 신이 임명한 자가 왕이 되었다는 신화는 모든 사람을 왕 앞에 굴복시키기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말은 곧 법이 되었고 그 좋은 첫 사례가 바로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입니다. 함무라비는 정의로운 왕으로 칭송받았으며 그가 남긴 함무라비법전은 그가 죽은 후에도 대대로 이어지며 제국을 통치하는데 힘을 발휘했습니다. 신들이 알려준 것을 기록했다는 신화적 이야기가 더해진 함무라비 법전은 사회적 질서를 확립시켰으며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뿌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최근에도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서 탈출해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이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 모여서 자신들만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데 이 또한 신의 뜻에 따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고 맹세하였습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문 둘 다 스스로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원리를 약속한다고 주장하지만 둘 다 시대적 상황 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담았을 뿐입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며 모든 사람은 영혼이 있고 영혼과 육체는 신이 창조했고 바로 그 신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입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선언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가 있어 보입니다. 탄생한 생명체들은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났고 멸종해야 할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졌고 이기지 못하면 사라져 왔습니다. 인류의 사촌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만이 현존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끼리 이룩한 현대 사회에서도 불평등한 신체조건에서 태어나고 불평등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렇듯 신화는 상상의 질서를 확립해 나가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장치였습니다. 모두가 신화를 믿기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서 많은 인구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볼테르는 아주 위트있게 신에 대해 말했습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말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하늘이 부여한 권리가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하늘이 부여한 권리는 있을까? 중력은 우리가 아무리 부인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신화에 기반한 상상의 질서는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인류는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서로가 생각하고 원하는 상상의 질서가 다르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지켜내야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의 질서, 신화가 필요한데 이것이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믿음을 강요하는 힘, 폭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으며 교육은 효과적인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종교에서 경전을 암송하게 하여 평생을 종교를 위해 헌신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국가와 제국 역시 충, 효, 예, 인 등을 교육하고 강조하여 신봉하게 만들었습니다. 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가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위대한 신과 자연법에 의한 실재라고 주장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요정 이야기, 드라마, 그림, 노래, 선전, 건축, 패션 등에도 깊이 자리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흡수된 상상의 질서는 인류를 강한 힘으로 구속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역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7. 메모리 과부하
인류가 제국을 이루기 시작하자 필요한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수렵채집인으로 살아갈 때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법률, 거래정보, 세금 등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뇌는 과부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기억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구전을 통해 전수하다 보니 혼동과 착각, 변형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늘어난 인구수만큼 복잡한 수학적 데이터 양이 급격하게 늘어나 인간의 뇌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았던 수메르인들이 처음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이들은 점토판에 6진법과 10진법을 사용하여 많은 데이터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기호를 사용하여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숫자와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했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자녀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점토판에 쓰지는 못했습니다. 완전한 문자체계가 되지 못한 부분적인 초기 문자로는 전하고자 하는 말과 생각을 기록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나, 연애편지는 기록하지 못하고 계산과 관련된 행정문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잉카 제국에도 결승문자인 키푸가 사용되었는데 여러 색의 끈을 매듭지어 수학적 데이터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기록의 힘이 더해져 오늘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한 제국은 더욱 복잡한 사회를 형성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아졌으며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해 문자는 계속 발전했습니다. 기원전 2500년 경이 되자 왕의 명령, 사제의 신탁 등을 기록할 쐐기문자 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이집트에서도 상형문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기원전 1200년에는 중국, 중미에서도 문자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기록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입니다. 이 문제는 문자를 개발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종이가 개발되기 전, 1년, 10년, 50년, 100년 동안 쌓인 기록들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할 것이며 그 기록들을 필요할 때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고 그 안에 서랍을 만들고 재배열하는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바로 인간이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정리하는 서기나 회계사로서의 사고체계를 장착해 세계를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세기 인도에서 발명되어 8세기 아랍 제국이 인도 숫자를 사용하면서 유럽으로 퍼지게 된 아라비아 숫자 0~9의 기호는 이렇게 자료를 처리하는 사고에 제대로 힘을 싣게 되었습니다. 이 숫자에 연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의 부호가 추가되면서 전 세계가 사용하는 문자체계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문자체계는 계속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에는 우리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5천 년 전,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수메르인들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점토판을 사용한 것이 이제는 인류를 위협하고 인류를 통치하는 새로운 지배자가 0과 1로 지구라는 작은 생태계를 관리하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를 유발 하라리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하였습니다.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대규모 협력집단으로 엮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였고 문자체계를 고안해 내어 이것을 현실화시키는데 성공하여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지구인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역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향유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압제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았습니다. 상류층은 좋은 것을 모두 가지고 살았으며 평민층은 상류층이 쓰고 남은 것을 조금 누렸고 나머지 피지배층은 가혹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먼 과거로 갈 것도 없이 미국을 한 번 보면, 1776년 모든 사람이 평등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작성하고 동의했지만 백인들에 국한된 평등이었습니다. 백인 중에서도 여자는 소외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도 제외된 평등이었습니다. 이들의 평등 안에는 흑인과 원주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으며 원주민일 뿐이었습니다. 미국의 질서는 신이 내려준 것이었다고 맹세하였지만 그 신은 인종의 차등을 명령했고 부의 위계질서를 옹호했습니다. 노예제도조차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신이 정해준 것이었습니다.
지배층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었고 옹호하는 차별적인 세상을 유지하고 싶었으며 자신들은 신앙심이 깊고 정의로우며 객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굳게 믿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종교인들 역시 지배층이었기에 신앙적으로 차별적인 사회를 지지해줄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도왔습니다. 신학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이 노아의 아들 중 햄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며 노예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 것이나 유럽이 전염병으로 물들었을 때 마녀의 짓으로 몰아서 무수히 많은 여인들을 화형에 처하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실제 사례입니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인간끼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고 믿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인종의 차별의식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굳어져 흑인들은 게으르며 지능이 낮고 본능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흑인들 스스로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들은 백인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사는 곳도 구별되었습니다. 노예 해방이 선언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열릴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 사회의 심각한 뇌관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은 문화영역으로까지 퍼져가서 흰 피부, 금발 직모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검은 피부, 곱슬머리, 납작한 코는 추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역사속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발생한 사회적 질서는 개선되기보다 더욱 강화되어 왔으며 한 번 희생자가 되면 영원히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권을 누린 계층은 그 특권을 유지하며 누리고 가난은 또 다른 가난을 이어갈 뿐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에서 또 하나 강조한 것이 있는데 바로 남과 여의 문제였습니다. 인종차별, 신분과 계층차별, 부와 가난의 차별 속에서 역사가 이어져 왔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차별이 벌어진 곳은 성별의 차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해 왔으며 사회적 권리를 제공받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최근까지도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은 독일에서조차 1997년에 부부간에도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전까지, 그리고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는 결혼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견해가 자리 잡고 있어서 부부간의 강간은 성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지갑을 훔치는 것과 같은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부터는 시작되었으며 남과 여를 같은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인식되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리스 시대처럼 일시적으로 남녀평등이 실현되었던 적은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를 중요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쟁이 잦았고 농사라는 힘든 일을 감당하기에 남자가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를 감안하면 아주 작은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지만 힘의 차이가 곧 권력의 차이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 남자는 자신이 가진 근력의 우월성을 앞세워 여자를 압박했을 것이며 이 방법은 큰 저항 없이 전체 사회에 지배적으로 발생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상상의 신화를 더하는데 종교인들이 힘을 보태어 신이 남과 여를 다르게 창조했으며 그 역할도 다르게 분배했다고 주장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굳건하게 역사 속에서 자리를 지킨 남녀의 차별은 여전하여 현재의 사회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높은 자리에는 남자가 대부분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남자들의 이야기, 히스토리-History이며 그들만의 역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그 중에서도 이긴 자, 강한 자, 지배층의 남자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역사입니다. 남과 여의 역사를 다루면서 유발 하라리는 성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다루는데 동성애는 종교와 문화에서 거부하는 것일 뿐 자연 세계는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말합니다. 동성애가 자연 속에서 발생한 것이지 인위적이고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에 인류는 존재하는 여러 다양성을 수용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 이후의 인류 역사를 유발 하라리만의 관점으로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쳅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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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요? 이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 인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양을 도는 아주 작은 우주 별, 지구에 태어난 우리. 그 사는 이야기, 또는 삶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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