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서는 매년 미국의 부자 순위를 발표한다. 미국의 상위 1퍼센트 부자들이 가진 재산은 엄청나서 웬만해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이처럼 미국 사회는 부자 상위 1%가 미국 전체 자산의 1/3을 소유하는데 이는 90%의 하위 사람들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또한 상위 10%는 미국 전체 자산의 71%를 소유하고 있다. 경제 불평등은 다른 어느 민주국가보다 압도적으로 앞선다.
이에 어떤 이들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시장경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불법을 행하지 않고 부를 획득한 것이라면 국가가 강제로 부를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연 누가 옳은가?
정의를 행복 극대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부의 재분배에 적극 찬성할 것이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독점하여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나누어 가져서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전체의 공리에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에게 강제로 세금을 부과하여 재산을 뺏는 행위는 부자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신이 번 돈은 자신의 것이므로 자신의 뜻대로 사용할 권리가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즉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되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계약을 집행하고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만 힘써야 하는, 즉 최소국가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안전벨트나 오토바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제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이 입을 수도 있는 피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진다면 국가가 법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또한 성인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매춘과 동성애, 낙태 역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제도도 국가가 규제할 대상이 아니라 고용주와 노동자가 서로 수용한다면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인들의 합의 속에 드러나지 않은 강제와 강요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분별해 낼 것인지가 문제로 여겨진다. 지적장애를 가진 성인이나 생계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한 임금체결, 노예에 가까운 삶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의 선택 역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이클 조던이라는 NBA 선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연봉을 받는다. 그의 수입에 문제가 있을까? 구단주는 조던 덕분에 입장료와 광고료, 티셔츠와 신발 등의 굿즈 판매 수익으로 엄청난 수익을 챙긴다. 그렇기 때문에 조던에게 기꺼이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조던 역시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무리 잘해도 연봉이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그의 멋진 플레이를 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993년 마이클 조던이 은퇴를 선언하고 골프, 야구에 도전했을 때 시카고 불스 농구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때 시카고 시의회가 팬들의 실망감을 줄여주기 위해 조던에게 농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면 어땠을까? 조던 뿐만 아니라 농구팬들조차 부당한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조던에게 강제로 농구를 시킬 수 없는 것처럼 조던에게 일방적으로 소득 재분배의 이유를 들어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할까? 조던 혹은 미국의 부자들의 재산에서 일부만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겠지만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강제적인 세금을 부과한다면 부자의 재산을 도둑질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또 마이클 조던이 타고난 재능은 일반인 아니 같은 농구 선수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에 조던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의 성취가 아니라 행운적인 재능 덕분으로 여길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사고는 각 개인이 누구이며 각자 타고난 재능이나 취미, 성향 등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같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 각 개인이 가진 재능이 자신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처럼 자기소유라는 개념을 통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안락사 역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생명도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합당해 보이지만 모두 수용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예를 들어 장기 판매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각자의 결정에 맡기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래가 자유롭게 허용되는 상황을 살펴보자. 일부 사람들, 조직들이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여 인신매매, 유괴, 납치 등과 같은 사건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며 장기 중 하나가 간절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장기인지 따지지 않고 구매를 원할 것이다. 우리는 인권이 돈보다 못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1년 독일의 로텐부르크에서 죽은 후 장기를 기증하듯 자신의 신체를 먹는 것에 동의한 사람과 사람의 고기 맛을 보고 싶은 사람이 만나 거래가 이뤄진 사건이 있었다.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식용에 내놓은 사람의 시체를 토막 내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올리브기름과 마늘 등을 이용하여 요리를 해 먹었고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20kg이나 먹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성인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안락사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개인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런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
정의가 결국 지향하는 바는 인류의 생존이고 번성이며 풍요이니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유를 허용하고 그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부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다고 해도 함께 사는 이웃들의 삶이 어려워 힘들어한다면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입니다. 우울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문을 닫은 상점들이 즐비해서 상가와 빌딩이 흉흉해지면 결국 재산이 많은 이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노숙자의 수가 늘어나게 될 것이며 범죄도 많이 발생할 뿐 아니라 부유한 사람은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며 어쩌면 부를 가진 이들이 자신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는 권리는 병마와의 고통스런 사투를 벌이는 사람으로 의사가 판명을 한다면 허용해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동물들도 생을 마칠 것을 직감하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인 우리는 마지막 모습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겠습니까?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면 자살이 많아질 것을 우려해서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가 극소수이지만 그렇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며 불치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로만 범위를 축소한다면 오히려 극단적이고 고통스러운 자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노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매일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깨어나 잠이 들기가 두려운 불치병에 걸린 아내가 남편에게 매일 부탁했습니다. 자신을 보내달라고. 남편은 죄책감에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 더 살아갈 수 있었던 자신도 죄책감에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병마와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에 한정지어 안락사가 허용되었다면 남편은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치료할 수 없는 병 때문에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 모두가 고통에 빠진다고 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서 죽는 순간까지 고통받는 개인, 그리고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는 자책으로 우울하게 인생을 마무리 하는 이들, 그런 당사자를 병간호 하느라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단위, 많아야 씨족 단위로 자급자족하며 살던 시대에는 우리 자신의 소유에 대한 문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였으나 인류가 더 큰 집단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면서 한 개인과 얽힌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과연 누구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즉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흑과 백을 분리하듯 이분법으로 생각해 결정을 지을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은 가족과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도 해서 자유를 가지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정도에 따라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디까지 개인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법과 규칙으로 정해 절제할 수 있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사려 깊게 고민하고 토론하며 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많이 고민하고 토의해서 생각보다 빨리 답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논의해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AI 시대에 들어섰고 호모 사피엔스보다 오래 살고 더 강한 휴먼로이드의 등장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시대를 맞이할 인류, 더 나아가 지구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로의 이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인류에게 절대적 진리, 불변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https://www.youtube.com/@%EC%98%A8%EC%9C%A0%EC%95%88%EC%9E%91%EA%B0%80%EC%9D%98%EC%84%9C%EC%9E%AC
'책,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 1승 / 송강호, 박정민 (2) | 2024.12.30 |
---|---|
소방관 : 곽경택 감독 (0) | 2024.12.27 |
모아나 2 (0) | 2024.12.02 |
달나라 / 그림동화책 (온유안) (0) | 2024.11.29 |
선물 / 그림동화책 (온유안) (1) | 2024.11.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