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지옥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안다고 생각한다면 경험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결혼 생활로든, 자신의 결혼 생활로든...
아~~~~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까...
인간은 혼자서는 자녀를 낳을 수 없고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며 살아가기 힘들기에 결혼은 필수적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결혼 적령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 상대와 결혼의 절차를 밟는다. 양가 상견례라는 어려운 만남을 통과하는 과정은 결혼의 무게감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무사히 허락을 받게 되면 결혼 생활의 단면을 경험하게 된다. 힘을 모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곳을 오롯이 둘만의 것들로 채우는 행복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많은 다툼이 발생하고 서로에게 불만과 불신이 촉발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의지하여 결혼을 준비한 사람들일수록 현실이 주는 충격은 크다. 쉽지 않은 세상, 자본주의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데이트할 때야 어디서 무얼 하든 함께 있으면 행복했지만, 경제력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을 마주하면 그런 현실 앞에 당황하게 된다. 웨딩 촬영 비용, 신혼여행, 상견례, 결혼식장, 심지어 청첩장까지 경제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며 다른 사람들, 지인들과 비교도 하게 되어 상대적 박탈감도 느낄 수 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차이도 발견하기 시작하며 이 시기에 결혼을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견례 등 쉽지 않은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더라도 쉽게 파혼을 실천하지 못한다. 어떤 거대한 물살에 휩쓸리듯 결혼식장에 들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들 때문에 힘들었을 뿐 결혼 후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에 마찰이 생긴다면 함께 살 때가 어느 정도 예상되지 않는가. 미래를 알 수 없고 상대, 심지어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올바른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누구도 말해 주지 못하며 지인들의 온갖 조언은 그저 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일 뿐 나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 오직 나의 편이 되어 줄 상대를 얻어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결혼을 한다.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하루를 준비하고 주인공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만인 앞에 맹세한다. 그리고 이제 증인과 함께 법적 부부로 등록하면 전혀 다른 삶의 길이 시작된다. 인간의 본능과 결핍이 누군가를 찾고 사랑하게 하여 결국 결혼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둘은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원하고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암묵적 강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본능이자 필요의 선택이기도 하며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 결혼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며 또 다른 하나의 가정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이 어찌 예외일 수 있겠는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사랑은 사치가 되고 만다. 한 가정의 번창은 경제력에서 결정되며 한 국가의 번영 역시 경제력이 근간이 된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이었으며, 이 때문에 목숨을 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아 왔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혼은 개인에게도 절실하지만 국가와 사회 역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결혼은 인구를 유지시켜 주거나 증가시켜 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며 경제적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생산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지만, 물건처럼 만들어 낸 인간을 어떻게 키울 것이며 비윤리적이고 존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이 중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대안은 가정이다. 국가와 사회는 양육의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부모의 사랑은 안정감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양육하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 요소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즉 결혼은 개인의 필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도 필요로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권장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회, 안정된 국가를 형성하는 데 결혼이라는 제도보다 나은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각종 혜택과 제도들은 가정을 전제로 이루어져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여러 손해를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서 결혼은, 사회가 던져 준 과제로 인식된 풍토도 결혼하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에게 시선,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데 따르는 사회적-법적 불이익,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준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을 떠나 정신적인 안정감과 여러 불편한 상황을 해소해 주며 궁극적으로는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유리한 상황을 마련해 준다. 그러므로 결혼은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피난처이면서 사회,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결정이다. 멸종을 원치 않는 인간 본성에 암묵적으로 결혼을 종용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왜 그렇게 자녀의 결혼을 강요하겠는가? 자녀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포함되겠지만, 자신의 유전자가 흔적도 없이 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닮은 자녀가 나의 유전자를 포함한 다음 세대를 낳을 때 모든 인생의 과업을 끝낸 듯 행복하지 않겠는가? 사회 구조와 제도, 사회의 시선과 더불어 가족 안에서의 요구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어렵게 한다. 이렇다 보니 성 소수자이지만 이성과의 결혼을 선택하여 자신의 안전과 사회적 비난의 화살을 회피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편견과 선입견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 소수자들은 자신을 숨긴 채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숨기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용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는 우리의 생각 그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집단사회를 이루어 공동체로 살아갈 때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혼제도이며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기에 우리 사회는 모든 기본 단위를 가족으로 정해 놓고 사회 정책,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가족 형태는 다양해져 가고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변해 가지만, 여전히 가정이 사회, 문화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최소 단위이며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데 기본이 되는 가정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는 바뀌지 않고 있다.
결혼하는 목적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15% 정도이며 나머지 부분은 정서적 안정감과 경제 문제, 자녀 순이었다. 여성의 경우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면 굳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가 60%를 넘었다. 결혼은 15 대 85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삶을 살아가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데이터이다. 이렇게 삶은 결국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여성의 사회 진출 기회와 사회에서의 대우, 연봉 평균은 남성보다 많이 낮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암묵적인 강요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한 만큼 직업이나 재산이 결혼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으로 결혼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사업이 되었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인생의 한 과정이 되었다. 거래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 거래에 가깝지 않나? 결혼이 지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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