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무지의 발견
인류는 최근 500년간 경이로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1500년 지구 인구는 5억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에는 70억 명에 육박합니다. 당시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는 13조 칼로리였지만 오늘날에는 1500조 칼로리를 매일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류는 지표면에 붙어살았는데 현재의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불과 500년 만에 이루어졌다니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 가장 결정적 사건의 시간을 꼽는다면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였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앨러머고도 사막에서 터뜨린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에 역사를 끝낼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인류는 지난 500년 동안 과학연구에 투자하면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어 각 국가와 부유층들은 과학에 더 많은 자원을 기꺼이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과학발전에 소홀한 국가와 단체들은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일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각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과학발전에 사활을 걸고 경쟁했습니다. 과학은 신화나 종교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나 맹신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무지함을 인정했습니다. '이그노라무스(ignoramus)'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기반으로 어떠한 이론도 신성하게 여기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습니다. 과학혁명의 위대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상상력과 실험을 총동원해서 밝혀내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함을 기꺼이 받아들인 과학은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과 믿음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였으며 탐구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협력시켜 온 신화나 종교, 문화에 대한 믿음은 점차 줄어들었고 과학이 절대진리에 대한 믿음을 대체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인류를 협력하게 만들었습니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은 것입니다. 로마는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 세기 동안 비슷한 조직과 규율, 병사들을 거느린 채 세월을 보냈습니다. 신무기를 연구하는 부서를 만들어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는데 많은 예산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칭기스칸의 원나라나 비교적 최근의 나폴레옹조차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전략을 활용하였을 뿐 신무기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인류의 전투 방향을 바꾼 화약을 개발한 중국 역시 이를 신무기 개발로 발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주로 폭죽으로 사용했습니다.
과학적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정체 시킨 이유는 또 하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권력자들이 과학 발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와 문화가 큰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슬람의 마호메트,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부처와 동아시아의 공자는 세상의 중요한 일은 뭐든지 알고 있는 존재들로 여겨졌으며 이들이 말한 삶을 살다가 이들이 말하는 후세로 떠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이전 것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진보적인 변화를 억제하게 된 것입니다. 신이 창조했고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저 신이 원하는 삶을 살다가 신이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만이 영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 타고난 재능을 모두 신을 위해 사용하는데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와 국가가 함께 사회를 통치했기에 많은 예산과 우수한 인력이 종교에 투자되었으며 자발적으로 종교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인류는 늘 죽음의 문제가 가장 중요했으며 숙명이었기에 종교적 신앙은 가장 큰 관심 분야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보다는 죽음을 인정하고 내세에 희망을 두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숙명으로 정했으며 인간은 그 숙명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은 호기심 많은 인간을 흔들기 시작하였으며 종교가 주장하는 것들의 오점을 찾아내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왕의 자손들조차 어린 나이에 힘없이 죽어가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병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죽음이 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신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암, 감염, 식습관, 위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지식, 신의 영역이었던 자연적 현상들도 이에 대한 지식들이 쌓이면서 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갔으며 여러 문제들을 과학적 기술이 해결해 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종교보다 과학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에 대한 신뢰는 그동안 종교에 쏟아부은 열정과 투자를 과학으로 옮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한 개인의 탁월한 능력의 지성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단초역할을 감당하지만 이를 실현시켜주는 것은 충분한 자금지원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이 상상할 수 없는 천재성을 머금고 있다고 해도 자금지원이 없다면 한 개인의 몽상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비용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성과를 얻는데에도 많은 기간이 걸리며 확실한 결과를 얻어내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용 부담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인류는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어디에 투자를 할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과학은 스스로 이를 판단하지 못하기에 인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원이 현실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곳에 집중되었습니다. 바닷속 수중고고학보다 남극연구나 동물들의 의사소통 연구보다 핵물리학, 정보통신, 전자제품 등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많으므로 절대적인 비용이 한쪽으로 몰렸습니다. 그 결과물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끝내 그 결과물을 얻어냈습니다. 경제와 정치적인 이익이 가장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을 경쟁적으로 군사력 증강에 사용하여 왔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정치, 경제, 종교와 결합하여 발전해 왔으며 인류는 필요한 결과물을 안겨주는 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를 강력하게 필요로 했으며 지난 500년 간 역사의 중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근대 과학은 유럽 제국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이 그리스, 중국, 인도, 이슬람 등의 고대 과학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인 과학혁명은 분명 유럽의 제국주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방대한 과학적 발견을 수립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일들은 유럽 제국을 지배한 지적 엘리트들에 의해서 발생했습니다. 물론 극동과 이슬람 세계에도 유럽 못지않은 지적 호기심이 있었지만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다윈의 생물학에 비할 수 있는 결과물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유럽인들이 과학을 더 잘하는 특별한 유전자라도 지녔을까요? 유발 하라리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유럽의 사고방식을 주목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유럽의 과학자와 정복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발견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며 새로운 지식이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배자들은 넓은 영토를 정복했지만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확장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몽골, 아즈텍인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 부를 차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지역을 정복해 나갔을 뿐 새로운 지식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닙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바다로 떠났습니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엔히크 왕자와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해안을 탐사하면서 발견한 섬과 항구의 지배권을 주장하였으며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자 스페인 왕의 통치권을 선포했습니다. 마젤란은 세계 일주 항로를 찾아내는 동안 만난 필리핀을 스페인의 소유로 만들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렇게 세계로의 대항해가 시작된 후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은 자신들의 나라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아메리카나 대서양과 태평양의 넓은 세계를 놓고 유럽과 경쟁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420년 중국의 명나라 때 정화 제독이 유럽보다 1세기나 앞서 대항해를 했었습니다. 규모는 엄청나 유럽의 대항해 시대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수 백척의 배에 3만 명의 인원이 탑승하여 아프리카까지 자신들의 위상을 알렸습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인들처럼 방문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방문하고 중국의 위상을 알리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이 여정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었습니다. 유럽 이외의 지역은 유럽이 세계를 누비며 발이 닿는 곳마다 자신들의 깃발을 꽂았을 때 자신들의 시야에 갇혀 지냈던 것입니다. 기술, 경제력, 군사력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았지만 세계관의 차이가 너무 달랐기에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유럽의 대항해시대로 돌아가면 당시 아프로아시아의 지도에는 빈 공간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며 세상은 이미 자신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제국들은 비어있는 세계지도를 그렸고 빈 공간을 채워 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탐험하고 정복한다'는 사고방식은 유럽인들에게 깊이 뿌리내려 제국주의 욕구와 과학적 호기심에 대한 열정으로 강하게 표출되었습니다.
유럽 제국의 포식자와 같은 정복은 경쟁적으로 행해졌으며 그들이 발을 딛는 땅은 엄청난 재앙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5~16세기에 유럽 제국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 인도를 탐험하며 세계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1519년 아즈텍 제국은 잿더미로 변했으며 남미에서 자신들만의 제국을 건설해서 살아가던 잉카제국은 이런 주변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제국을 발견했고 그 결과는 아즈텍 문명과 동일했습니다. 역사속에서 사라져 간 이들이 이웃 제국의 상황만 파악했더라면 수적인 확실한 우위와 자신들의 지역이라는 혜택을 활용해서 제대로 저항해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의 제국 안에 갇혀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제국의 몰락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침략자들은 식민지를 지상의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저항하면 무조건 죽였고 의도치 않게 데려온 바이러스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전멸하였고 그 빈자리를 아프리카 노예로 채워 식민 지역에서 최대한 많은 이윤을 챙겨갔습니다. 침략자들의 계획과 본모습을 예상하지 못한 채 얼마 되지 않은 수의 군대에 허무하게 무너져 간 미지의 제국들은 그렇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1768년 런던 왕립협회의 후원과 영국 해군의 선박 지원으로 영국을 출발한 제임스 쿡의 탐험대는 호주, 뉴질랜드에 도착했습니다. 이 배에는 천문학, 지리학, 기상학, 식물학, 동물학, 인류학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과학자들과 함께 무장한 선원과 해병대가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이 탐험대는 도착하는 곳마다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했으며 외부 세계에서 온 이들의 본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는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대하며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착문화는 파괴되었고 원주민들을 사냥하듯 살해해 90%가량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태즈메니아인들은 1세기 후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혹독한 운명을 맞이하기까지 했습니다. 종교인들도 함께 갔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원주민들에게 강제수용소에서 머물게 하며 기독교를 전파하는 정도였으며 이들에게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과 선의를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1798년 나폴레옹도 이집트를 침공할 때 165명의 학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이 연구자들은 이집트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종교, 언어, 식물 연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렇게 유럽은 세계를 탐험하고 정복한다는 사고방식으로 끊임없이 진출해 나갔습니다.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새로운 지역을 연구한 과학탐험대이자 소수의 과학자를 데리고 간 정복원정대였던 제국주의 시대의 경쟁적 확장은 인류역사를 뒤흔들었습니다.
협소한 시각 때문에 끔찍한 대가를 치른것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원주민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의 대제국들 역시 유럽 제국들이 세계를 탐험할 때 관심을 가지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유럽 제국들은 식민지들로부터 얻게 된 엄청난 부와 자원 덕분에 아시아를 침공하여 제국들을 무너뜨리고 엄청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인류가 우주로 발빠르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끼리 서로의 삶을 존중하게 않고 인정사정없이 죽이고 노예로 삼아 짐승처럼 다룬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16. 자본주의의 교리
자본,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이며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군대나 연구실은 은행이 없이는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돈이 인류의 혁명을 이끄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경제적 번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며 제국을 세우고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 준다는 강한 믿음은 자본주의를 낳았으며 '성장'이라는 슬로건이 마법과 같은 힘을 불어넣어 최근 500년 동안 2500억 달러였던 인류 총생산이 현재 60조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폭발적인 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런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 때문입니다. 은행은 아직 돈을 벌지 못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과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면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업과 개인은 은행이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자금을 빌려준 덕분에 자신들의 꿈을 실현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업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진 은행의 투자는 적중하였고 원금에 이자를 포함해 돌려받게 되었고 또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더 큰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신뢰와 상상력을 활용하지 못했다면 경제는 이런 폭발적인 성장을 결코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놀라운 신뢰와 신용, 상상력을 인류는 왜 좀 더 일찍 실현시키지 못했을까요?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세계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500년 이전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보다 과거가 더 좋았으며 미래는 현재와 비슷하거나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의 총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부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빈곤에 처해져서 부자가 되는 것을 죄악으로 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가치관이 지배하다가 과학혁명과 진보라는 개념이 싹을 틔우면서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인간의 생산,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으며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경제가 서서히 성장을 현실로 보여주자 미래에 대한 신뢰는 더욱 강화되었고 더 많은 신용을 낳았습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언문이 될 수 있는 국부론을 썼습니다. 그의 책 1권 제 8장에는 이런 주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지주나 직공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면 남은 돈으로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해서 더 많은 이윤을 보려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전체의 부를 늘리게 할 것이라는 그의 아이디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생각 중 하나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탐욕이 선이며 개인의 욕심과 이기주의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이타주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윤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윤이 생기면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부자가 되면 너에게도 그 부의 혜택이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자에게도 천국의 문을 열어주게 된 것이며 부자가 되는 것, 성공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세 귀족들이 연회, 전쟁, 자선, 종교에 기부 등의 관대함과 과시적인 소비를 신봉했던 분위기가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며 자본주의를 따르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신흥 자본주의자 엘리트들이 등장하여 부를 창출하고 막대한 자본으로 새로운 부를 위해 재투자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투자를 통해 얻게 된 이익을 재투자하면 경제가 더욱 빠르게 성장하며 부의 총량도 증가한다는 아이디어를 앞다퉈 선전했으며 점차 자본주의는 경제를 넘어 하나의 신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육과 가치관에까지 침투해 경제성장을 이루면 정의와 자유, 심지어 행복까지도 보장된다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과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국가도 생산과 수익을 늘려주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성장이 끊임없이 지속된다는 자본주의의 믿음은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지식에는 위배됩니다. 자본주의는 투자는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며 창출된 이익을 다시 재투자하면 또다시 수익이 창출된다는 무한 확장성을 이야기하지만 우주 어디에도 무한히 증가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류의 경제가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경제의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인공지능, 우주개발 등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여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인류에게 끊임없이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순간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환상의 자본이 순식간에 소멸되어 인류 전체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유럽 제국에 등장해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을까요? 근대에 들어섰을 때 아시아의 제국은 청나라와 오토만 제국이었습니다. 이들은 세금과 약탈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반면에 유럽의 왕과 상류층 사람들은 상인의 사고방식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세금보다는 신용대부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최대의 수익을 향한 야망을 키워 갔습니다. 은행가와 상인이 세워 가는 새로운 제국은 갑옷을 두른 왕과 귀족이 세운 제국을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148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을 찾아가 동아시아를 향한 새 무역로를 개척할 테니 선단을 구성할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탐사는 위험이 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외면받는 사업이었습니다. 배를 건조해야 하고 선원과 군인들의 급여를 줘야 했고 그들의 보급품을 마련해야 했으며 수익을 낸다는 보장은 더더욱 희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왕은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콜럼버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스페인의 통치자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에게 투자를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정세와 이사벨라의 상황이 맞아떨어져 이사벨라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 결정이 인류의 역사를 현재에 이르게 하는데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이 결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얻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유럽은 위험하게 여겼던 탐사에 큰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기꺼이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뢰는 신용대출을 통해 자금을 공급했고 새로운 대륙의 발견 성공은 식민지를 안겨다 주었으며 식민지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익을 되돌려 주는 마법 같은 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아시아의 제국은 일정한 지역을 통치하는데 만족했지만 유럽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복을 멈추지 않고 확장시켜 갔습니다. 그 결과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보물들은 쉬지 않고 유럽의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식민지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유럽에 막강한 힘을 과시했지만 역사는 늘 흥망성쇠가 법칙처럼 작동했습니다.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독재국가의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용했고 프랑스와의 전쟁은 잘 끝냈지만 이후 다시 이어진 터키인들과의 전쟁에 말려들어 자본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신용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빈 자리를 네덜란드가 높은 신용도와 사유재산권을 보호해 주는 사법제도의 힘을 바탕으로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즉 네덜란드 제국은 네덜란드 정부, 국가의 힘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상인들이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회사의 주식을 활용해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고 1602년에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를 정복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으며 200년 가까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습니다. 네덜란드의 위세가 지속될 것 같았지만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가 아메리카에서 영국에게 패하며 금융과 제국의 위상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빈자리를 놓고 다시 프랑스와 영국이 대결했는데 우세하리라 여겼던 프랑스가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금융붕괴 사태인 미시시피 버블을 터뜨렸고 영국이 제국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급속히 팽창해 나갔습니다. 영국은 네덜란드 제국처럼 민간 주식회사들을 앞세워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이 자본주의에 열광할 때 자본주의자들은 정치가 자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국가, 정부, 정치적 힘이 자본 시장에 개입하면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경제성장을 더디게 하고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현명한 경제정책은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하고 과세를 줄이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며 시장의 힘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자들의 이론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시장은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시장을 주도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탐욕과 실수, 이기심이 강력하게 작동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시장을 독점해서 부를 독점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공모를 시도했습니다. 유럽 자본주의의 부흥은 대서양 노예 무역과 자원 침탈로 인해 발생했으며 이런 재앙은 독재자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가 아니라 고삐 풀린 시장의 힘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본가들은 식민지에 있는 금광과 은광 등의 자원 개발을 앞다퉈 진행했으며 넓은 대지에 사탕수수, 면화, 담배 농장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광부와 농부가 필요했으며 때마침 식민지의 인력을 강제로 노예처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아프리카 노예가 아메리카로 이동했는데 약 1천만 명에 육박하며 노예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럽인들의 안락한 삶과 즐거움을 위해 이런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부나 국가도 통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원하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제국의 확장을 위해 수백만 명을 서로 살해했고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이 종교적인 문제로 수백만 명을 서로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실체가 불분명한 자본주의가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또 수백만 명을 죽였던 것입니다. 노예 무역은 아프리카인과 식민지의 원주민들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본주의에 인간의 탐욕에 더해져서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19세기 이후에도 자본주의 윤리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유럽을 휩쓴 산업혁명은 은행가와 자본가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노예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을 쟁취하지 못한 모든 이들의 삶이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괴물 같은 모습에 맞서기 위해 공산주의가 대안으로 나와 봤지만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해서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덕분에 분명 인류의 경제 파이는 분명 커졌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하며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는 영원히 이루지 못할 문제로 남겨졌습니다. 자본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성장해오면서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진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좋아져서 생활수준도 향상했고 과학의 발전을 진행해 기대수명도 높였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점차 나은 삶을 인류 모두에게 제공하는 세상이 정말 찾아올까요? 자본주의는 소비지상주의를 불러왔는데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재투자해야 하는데 소비지상주의는 사람들에게 탐닉은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빚을 내서라도 원하는 물건을 소비하도록 부추깁니다. 인류는 이제 투자하라는 구호와 소비하라는 구호가 함께 울려퍼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비를 줄이면 회사가 위험해지고 회사가 부도가 나면 직장을 잃어서 개인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논리로 소비를 권장하고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대책도 실행됩니다. 수준에 맞지 않는 과한 소비는 개인의 삶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에 충분한 부를 쌓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보내거나 힘겨운 일상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삶만 놓고 봤을 때 강제로 착취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의 신분사회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이들과 유사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이 곧 권력이고 인격이 되는 사회는 인간 위에 자본이 있게 하여 모든 윤리보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어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결코 오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17. 끝없는 혁명
인류는 자연으로 인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점차 현대 산업과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고 시간이 인류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시대를 초래했습니다. 생산을 중시여기는 자본주의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을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도록 만들었고 동일한 시간에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784년 영국에서는 최초로 마차 운영시간표가 등장하였고 1840년에 최초의 기차 시간표가 나왔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해와 계절의 변화를 따르는 것보다 시간에 맞춰 살아가야 효율이 높아졌기에 시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까지 제정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국민들이 시간에 맞춘 삶을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 번씩 시간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의 변화 이외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도시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 보통 사람들의 삶과 권리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가장 큰 변화로 주목한 것은 바로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그 자리를 국가와 시장이 대신한 사건입니다.
인류는 약 1백만여 년 전 초기부터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된 작고 친밀한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습니다. 모든 인류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족과 공동체라는 점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사람들의 일상은 가족과 친밀한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 개인은 모든 필요, 즉 식량, 교육, 의료, 복지, 주거, 직업, 보호 등을 가족과 공동체를 통해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국가와 시장이 자신들의 권력을 키워가며 대신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먹을 것과 입을 것, 주거문제는 시장이 주도해 갔으며 교육, 의료, 복지, 보호는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개인을 가족과 공동체에서 분리시켰습니다. 개인은 모든 결정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해방을 얻기도 했지만 소외된 개인은 고독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며 국가와 시장이 주는 불합리함에 저항할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시장은 개인을 착취하고 국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개인을 억압하기도 하였는데 개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피해를 당하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개인은 국가가 제공하는 국민이라는 공동체와 시장이 제공한 소비 공동체라는 상상의 공동체에 속해 살아갑니다. 이 상상의 공동체는 우리로 하여금 수백만 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모두가 공통의 과거, 관심사,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 개인은 국가의 상징을 보고 흥분하며 국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미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합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가들은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편의대로 종이지도에 선을 그어 만든 경계선의 산물일 뿐입니다. 또한 같은 지역에 전혀 다른 국가가 세워지고 소멸되며 끊임없이 바뀌어 왔습니다. 그리고 소비 공동체 역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상상의 공동체를 제공해 줍니다.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끼리 연대를 이루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한 공동체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어느 가수나 배우, 스포츠팀 등을 추종하는 팬클럽 회원들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어 힘을 발휘합니다. 이에 환경주의자들, 채식주의자들, 인권운동가들 등 다양한 주제로 모이는 다수의 공동체 역시 같은 경우에 속합니다. 이들의 힘은 종종 국가보다 강할 때도 있습니다. 한 개인은 도대체 어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일까요?
지난 2백 년 동안 인류는 정말 빠르고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구의 1/4을 차지한 영국을 필두로 모든 제국들이 자신들이 차지한 식민지에서 철수했으며 다시 제국을 건설하려는 국가는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이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그 이후 전쟁은 멈추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만 일부 국가간의 전쟁, 국지전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인류는 전쟁의 소식을 늘 전해 듣지만 전쟁을 치르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대에 못지않는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최근 2세기 동안에 발생한 대량학살과 세계 대전 등의 끔찍한 역사에만 주목하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인류가 누린 풍요와 평화의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는지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아름다운 지구의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던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을 누렸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연합하여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 왔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2세기 동안의 모습이 전쟁과 무분별한 학살, 억압만의 시대는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앞으로의 인류 역사를 잘 만들어 가야 합니다.
18.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진화를 시작해 다양한 인간 종으로 진화했고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습니다. 이후의 인류 역사, 세계 역사를 숨가쁘게 살펴본 유발 하라리는 이제 인간의 마음을 돌아보는 쪽으로 시야를 돌립니다. 아주 더디게 발전하던 인류가 지난 200년 간 놀랄 만한 혁명을 연쇄적으로 발흥시키며 여러 방면에서 급변했습니다. 경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이고 정치, 인권, 일상생활, 사회질서, 문화, 인간의 심리마저도 이렇게 크게 변할 수 있나 싶을 만큼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급속한 변화 속에서 인류는 행복해졌을까요? 인간의 삶, 존재 이유,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겠지만 유발 하라리는 결국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수렵채집인들, 농업혁명이 발생했을 당시의 사람들, 중세와 근대 시대의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의 노력으로 과거와 비교한다면 초인적 힘과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평균수명이 짧았지만 최소한 노예의 삶을 살지 않았을 수렵채집 시대가 농업사회나 식민지 시대, 세계대전과 전쟁의 시대보다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유함은 분명 인간의 삶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사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부유함이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이라면 엄청나게 증가한 경제적 부유함이 인류의 행복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수렵채집인들보다 월등히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게 될 것입니다. 비교는 경제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시대의 노예의 삶을 산 사람들, 대항해시대에 식민지배를 받으며 처참한 삶을 산 사람들, 인류 역사에서 보면 지구 곳곳에서 자주 있었던 대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전쟁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사람들 등의 경우보다는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 사회 질서가 균형 잡힌 다른 국가, 사회와 비교해 자신들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서 목숨을 걸고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마치 지옥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체는 오랜 세월 동안 수렵채집인의 삶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는데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로의 급변으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고 진화된 본능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삶에 불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가진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의학이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더 나아가 노화를 방지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고 해도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슬픔과 고통을 영원히 간직하고 사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하더라도 상상하지도 못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불안과 분노, 고통과 슬픔이 견딜 수 없게 쌓여 어느 시점이 되면 스스로 자신의 영생을 중단시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러한 불만족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자, 종교인, 문학가들은 행복의 본질을 수천 년간 숙고해 온 결과 사회적, 윤리적, 정신적 요인도 물질적 요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환경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강조해왔습니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그 무엇이기에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바꾸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삶은 보람 있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사고는 인간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사회과학자들은 행복을 정치, 자유, 사회 시스템 등과 연관시키지만 생물학자들은 생화학적이고 유전적인 요인과 결부시킵니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신체 내부의 쾌감적인 감각입니다. 혈관 속을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반응에 의한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쾌락적인 신체적 감각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유사한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을 만큼 다양한 인간들은 행복을 느끼는 감각도 모두 제각각이어서 동일한 사건이나 감정을 경험했을 때 느끼는 행복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쾌감을 향한 의지도 다릅니다.
학자들이 행복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 아직 초기 가설을 만들고 연구방법을 찾는 단계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단지 편안하려는 본성이 아닙니다. 행복은 자기 만족이며 그것을 채우고 이루기 위해 편안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통을 감내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로 분류하는 양육의 현실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양육의 모든 일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고 느끼지만 아이가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하며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며 오히려 더 잘 해내기 위해 노력까지 합니다. 행복은 단순하게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 나가게 하는 의지도 아주 크게 작용합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을 겪는 순간에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으며 아무리 안락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의미 없는 삶은 끔찍한 무료함과 시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목숨을 희생해서 얻게 된 제국이 당시를 산 개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을까요? 인류가 온갖 수고와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이룬 무수한 업적들이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현재 우리의 시선으로 봤을 땐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과거의 사람들이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여 집단적 환상 속에서 깊은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면 우리는 행복을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행복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주관적인 영역으로 보이며 삶의 의미와 생화학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인 이상과 가치, 그리고 본능에 의해 결정되니 이것들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행복을 위해 한 종교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거나 특정 사상에 깊이 빠져 살고 술과 마약, 성관계만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과연 그것들이 행복의 핵심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행복이 객관적으로도 규정될 수 없지만 주관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주관적인 느낌이 행복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능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여러 종교 중에서 특히 불교의 입장을 흥미롭고 깊게 다루고 있으며 그 내용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행복의 중요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교도들은 2500년 간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유하고 연구했습니다. 과학자들이 불교 철학과 명상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불교의 접근방식은 생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의 측면에서 일치합니다. 행복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생물학과는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즐거운 감정은 지속하거나 증가시키려고 하고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축소시키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감정 모두가 인간을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누구나 거부하고 싶은 감정이기에 당연히 사라지게 해야 하는 감정인데 의아스러운 것은 바로 즐겁고 좋은 감정 역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무(無)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 주지 않는데 이를 계속 추구하려는 마음은 스스로를 더욱 괴롭히고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해서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행복을 위해 부정적인 감정은 끊임없이 밀어내느라 애쓰고 이것만으로도 힘든데 행복을 쫓아 가려고 애쓰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진정한 행복을 무너뜨리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모든 감정에서 평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평화적 상태입니까.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뒤따르는 괴로움도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인 성취에 대한 욕구만이 아니라 내적인 행복을 추구하려는 의욕마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인간의 짧은 인생으로 보면 참으로 긴 역사이면서 우주의 역사와는 비교하지도 못할 짧은 순간인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돌아보며 유발 하라리는 행복이라는 아젠다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그 해답을 찾는 데에는 여전히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노력은 계속 이어질 텐데 과연 한 걸음씩 그 해답에 가까이 접근해 나갈까요? 아니면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에 갇힌 것처럼 한 걸음 접근했나 싶으면 더 큰 질문만이 우리를 기다릴까요?
19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는 자연선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구를 정복하고 탐사와 연구를 해오며 역사를 써 왔습니다. 그리고 활동 범위를 꾸준히 늘려서 이제 우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적,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인류가 모든 한계를 초월해 가고 있으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추측이 되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현실속에서 절실하게 실감하며 절대적인 창조자가 모든 우주를 설계했고 인간은 그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특정 신을 신봉하지 않는 것이지 우주의 생성 원인과 존재한 이유나 근원을 설계한 절대적인 어떤 존재가 없다고 확신하며 증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구라는 공간 안에서 주어진 삶을 잘 살거나 종교에서 말해주는 세상 그 너머의 곳으로 가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호기심과 욕심, 그리고 돈의 힘과 국가의 의지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했으며 조금씩 지적 설계자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전능한 신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지만 자연법칙을 스스로 통제하고 설계하는 기술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평범한 흰 토끼의 배아에 녹색 형광을 발하는 해파리 유전자를 삽입해서 녹색 형광 토끼 '알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인간의 성별을 아예 바꿔 놓기도 합니다. 생쥐의 등에 소의 연골을 이식해서 희귀한 모습의 생쥐를 만들어 내고 인간의 장기를 배양시키기도 합니다. 인간의 노화에 영향을 주는 DNA를 찾아 인류의 삶을 바꿔 놓으려고 하며 멸종한 동물들과 인류의 사촌들까지 복원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윤리적 비판과 정치적 결정 등이 막아보려고 하지만 속도를 늦출 뿐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 보입니다. 가령 암, 알츠하이머 혹은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그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기억력이 몇 배로 향상된다면 기억력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호모 사피엔스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니 개발한 치료제를 폐기하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을 하는데 거리낌없는 시대인데 건강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멈추겠습니까. 시력이 몇 배 뛰어나고 심지어 나빠지지도 않는 눈을 배양한다면 시력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그 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했는데 그들의 탁월한 체격과 운동량이 각종 스포츠에서 월등한 결과를 낸다면 그들의 뛰어난 DNA를 호모 사피엔스와 결합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건강에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고 오히려 건강에 이로운 것만으로 채워진 우유나 고기를 생산할 기술을 얻게 된다면 기업과 소비자가 포기할 수 있을까요?
사이보그 기술은 인간에게 필요한 발과 팔을 만들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그 정교함은 날로 발전해 인류를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개발한 컴퓨터는 여러 부분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스스로 학습을 하고 창의적으로 노래를 만들며 그림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인간의 뇌를 전부 컴퓨터 안에서 재창조하거나 한 인간의 뇌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 안에 저장하려는 시도를 2005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제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입니다. 이런 새로운 기술들이 호모 사피엔스에 접목되고 대체되다 보면 언젠가는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지고 전혀 다른 존재가 다음 세상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멸종한 다른 생명체들의 역사처럼 책에서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릅니다.
1818년 메리 셀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출판해 인간이 좀 더 나은 존재를 창조하려다가 괴물을 만들어 냈다는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고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지금과 같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기술이 발달한다면 머지 않아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게다가 신체적인 조작 뿐만아니라 정신도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AI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영향을 주고 있으며 세뇌당한 집단은 판단력을 상실하여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약물로 뇌의 반응을 변화시켜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탄생하여 멸종한 수많은 생명체들은 외부의 변화에 의해 사라졌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과 발전시킨 과학에 의해 자멸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될 지도 모릅니다. 7만 년에 걸친 사피엔스의 역사는 이제 어떤 결말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구에서 살다가 사라진 생명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인데 가까운 미래에 정말 막을 내릴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질문에 답을 찾는데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욕망의 성취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는 인간이 과연 이 질문에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불만족스러워 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인간이기에 이 질문은 조금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길 권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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