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열리기 전
혼돈에서 태어난 그 무엇이 있었다.
침묵과 공허 안에서
그것은 그것만으로 충만하니 변하지 않았고
두루 돌기는 하지만 닳아 없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것에서 모든 것이 말미암았으니 그것은 세상의 어머니.
그 이름 내 알 수 없으나
'도(道)'라 부르겠노라.
'대도(大道)'라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으리라.
도는 거대하므로 나를 벗어난다 할 수 있고
나를 벗어난다니, 그것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자리한다.
또한 멀리 있으니, 그것은 결국 내게 되돌아오리라.
-노자.[도덕경], BC600년 경.
맑은 하늘 높은 곳에 뚜렷하게 눈에 띄는 은하수라는 거대한 길이 있다. 은하수는 자신의 광채로 밝게 빛나며 이 길에는 신들께서 주석하신다.이 곳은 위대한 우레의 왕궁이며 막강한 천상의 실세들이 거주하는 곳. 나는 감히 이 곳이야말로 위대한 하늘의 바른 길이라 부르리라.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AD 1
창조주가 세상을 빚었다고 주장하는 아둔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창조됐다 함은 그릇된 가르침이며 버려 마땅한 가르침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신은 창조 이전에 어디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신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만일 신이 유를 만들고 난 다음,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유란 것이 또 무엇에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끝없이 이어지는 논리의 순환 고리에 사로잡히고 말 뿐이다. 세상은 창조되지 아니했으며 시간 자체가 그러하듯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음을 명심할지어다. 이는 또한 진리에 기초한 것이니.
-마하푸라나(위대한 신화), 인도 자이나교, AD 9
어떠신가요?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들의 존재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시대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충분한 시간만 확보한다면 우주의 비밀들을 모두 밝혀낼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칼 세이건은 별들의 인생을 살펴본 후 이제 궁극의 질문, 세상과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우주 시작의 원인, 우주 시작 전에 대한 상상, 우주 바깥에 대한 상상 등이 짙은 암흑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때 숨막힐 듯한 답답함을 회피하려고 하나요? 알 수 없는 영역이니 나의 삶에나 충실하자며 살아가나요? 아니면 존재하게 한 어떤 원인의 존재를 상상하며 여러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 종교의 가르침에 의지하시나요? 이것도 아니라면 어둠을 돌파해 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계신가요? 여기서 칼 세이건은 자신의 생각을 밝힙니다. 우주를 평생 연구한 그의 생각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현재의 과학은 100억년에서 200억년 전에 빅뱅이라는 대폭발의 순간이 있었고 지금의 우주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폭발이 있었는지에 해답을 찾기에는 인간의 지식과 역사가 너무나 미흡해서 알 길이 없지만 폭발이 있었음은 거의 확실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대폭발 이후 우주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팽창을 계속해 왔습니다. 공간의 팽창은 뜨겁던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의 온도를 떨어뜨려 식어 가게 했습니다. 뜨거울 때에는 감마선이 방출되었으며 점차 식으면서 엑스선, 자외선을 거쳐 인간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대역으로 옮겨 왔고 온도가 더 내려가면 적외선과 전파 대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을 만큼 식어서 매우 긴 파장의 빛을 내는데 이것을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라고 부릅니다. 우주가 지금처럼 식기 전 가시광선의 빛이 방출되던 시기에는 우주전체가 눈부시게 빛났을 것입니다.
소립자로 충만하던 고온 고밀도의 원시 화구가 점차 자라 가스 구름으로 자라났고 이 가스 구름이 거대한 회전 원반체로 변신하여 반짝이는 점들을 수천억 개씩 품으면서 자신의 밝기를 더해갔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하라고 부릅니다. 은하는 은하단으로 성장하고 중력 수축이 진행됨에 따라 은하들의 회전이 시작되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은하는 나선모양이 되었습니다. 중력 수축으로 성간운의 부피가 감소하면서 중심부의 온도가 상승하여 약 1000만 도에 이르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며 드디어 별이 탄생하게 됩니다. 별들 중 질량이 큰 별은 작은 별에 비해 더 빠르게 핵연료를 소진하고 초신성 폭발로 자신의 일생을 마감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무거운 원소들을 성간으로 보내면서 새로운 별의 원료를 제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 진화의 대서사시입니다.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여 진화한 후 지능을 가진 생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폭발 이후 수없이 많은 것들이 생성되기도 했지만 블랙홀, 퀘이사는 엄청난 파괴와 격렬한 혼돈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2015년에 발견된 퀘이사는 1초에 지구 하나만큼을 소멸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는 자연과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인 동시에 은하와 별과 문면을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파괴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수 은하는 중년기에 접어든 착실하고 안정적인 은하라고 합니다. 태양은 은하의 중심을 초속 200km, 시속 72만km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속도로도 우리 은하를 한 바퀴 도는데 2억 5000만 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정말 우주의 크기를 우리의 뇌가 상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태양의 나이가 50억 년쯤 되니 우리 은하를 20바퀴 정도 완주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칼 세이건은 빅뱅과 우주팽창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택시가 우리 앞을 지나갈 때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지고 멀어질수록 소리가 감소하는 도플러 효과가 빛에서도 나타납니다. 택시는 소리가 변했지만 빛은 색깔이 변합니다. 빛이 관측자에게로 접근할수록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이동하는 청색 편이가 발생하고 관측자에게서 멀어지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는 적색 편이가 생깁니다. 그런데 멀리 있는 은하들에서는 도플러 효과에 따른 빛의 적색 편이가 주로 관측되기에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력으로 후퇴한다는 추론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고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록 은하들의 간격은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 중에는 은하에서 관측되는 적색 편이는 단순한 도플러 효과의 결과가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매커니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주는 신비로 가득하여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지어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주의 저 광막한 심연에는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터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한 팽창을 계속 진행할까요? 그렇게 된다면 별들은 차갑게 식어 점점 죽어갈 것이며 은하와 은하,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멀어져서 우주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장면이 연출 될 것입니다. 끝없이 팽창만 하는 우주도 그리 기분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정확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가장 신빙성이 있는 빅뱅과 우주팽창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심각한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대폭발의 순간은 어떤 상태였으며 공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했는지? 대폭발 이전의 상황이나 환경, 요소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우주 대폭발이 있었다면 그 중심은 어디일까요? 어디를 중심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중심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있을 텐데...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일까요?
그리고 우주의 끝이 있을까요? 경계가 있다면 그 바깥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지면서도 아득한 어둠에 휩싸이는 이 물음들은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이 질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신에게로 떠 넘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까요? 전 지구 곳곳에 있는 다양한 신화, 신들의 이야기에 의지하는 것이 나을까요?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했을 칼 세이건은 과학과 종교를 통틀어서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장 멋진 아이디어를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검증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우주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이루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자, 전자 같은 소립자들도 그들 나름의 닫힌 우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 세계 안에 끝없이 넓은 우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우주도 이와 동일하며 우리의 우주 위 단계의 우주도 존재하여 그들 나름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낮은 단계의 계층은 확인이 가능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단계의 우주는 확인할 수 없는 구조의 연속이라... 그리고 칼 세이건은 작은 희망을 블랙홀에서 찾습니다. 어쩌면 블랙홀이 우리를 또 다른 우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남기고 영원의 벼랑 끝에 서서 정들었던 우주와 헤어져 또 다른 우주로 뛰어들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죽음 이후에 다른 우주로 가게 되는 지 누가 알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죽음이 슬픈 일이 아닐 수 있어 정말 다행스러울 것 같습니다.
우주의 시작, 우주의 생성 원인, 우주의 외곽, 이 모든 존재의 근원과 이유에 대한 답은 칼 세이건은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무리한 답변을 내리기보다 자신이 생각한 우주 구조에 대한 의견만을 제안합니다. 가장 솔직하며 바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종교지도자를 꿈꾸며 자신이 마치 신인 것처럼, 신과 함께였던 것처럼 우주의 섭리를 풀어놓는 것은 과학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난해한 질문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 해답을 찾기 전까지 계속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마음은 시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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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안
우리는 누구인가요? 이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 인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양을 도는 아주 작은 우주 별, 지구에 태어난 우리. 그 사는 이야기, 또는 삶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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