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은 유명한 것을 넘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에 맞게 편집된 도서를 읽고 있으며 고등학교에서는 한 번 꼭 다루는 책이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이 왜 이렇게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
마이클 샌델은 미국 미네소타주의 최대의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에서 유태인 집안의 첫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975년에 파이·베타·카파의 회원으로 브랜다이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즈 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찰스 테일러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얻었다. 이후 그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를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자유주의자들의 개인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본래의 인간성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인식이라고 하였고 사회적 연대와 시민적 덕목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를 주장한다.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 대학에서 "Justice"라는 과목을 20여 년간 맡고 있으며 만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해 하버드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들이 들은 강좌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2009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 대한민국에 번역되어 인문학 서적으로는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여 화제가 되었다. KBS의 책읽는밤에서는 샌델의 이 책을 다루면서 2010년 대한민국에서 왜 다시 정의가 논의되고 있는지에 대한 배경과 책의 의미에 관해 패널들이 토론을 나눴다. 2011년 4월, 대한민국 판매량 100만부를 돌파했는데 이는 1990년대 이후로 인문학 서적의 판매량이 꾸준히 줄었던 것을 보면 교양인문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영미권에서는 10만 부 이하로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으나, 유독 일본과(60만부) 대한민국에서 많이 팔렸다.
그가 정의를 판단하는 세가지 기준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을 들 수 있다. 즉, 정의가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 좋은 영향으로 끼쳐야 하는지로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각각의 판단방식은 그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책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와 역사적인 철학가들의 가르침을 통해 각각의 정의로움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면 공동체주의를 정의와 연결한다. 2020년 최근에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제 1강 옳은 일 하기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이고 철학적 사고 여행을 통해 그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대서양으로 빠져나간 자연재해 사건이 있었다. 이 재난이 있은 직후 주유소에서는 2달러에 팔던 얼음을 5배나 더 비싼 10달러에 판매하였고 건설업자들 역시 복구비용을 비싸게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생필품, 소형발전기, 피해를 입지 않은 숙박업소는 원래 가격에서 몇 배를 올려 받았다. 언론에서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썼고 당시 플로리다 주 법무장관이었던 찰리 크리스트도 남의 고통을 이용해 큰 수익을 챙기려는 탐욕이 도를 넘은 기막힌 일이라고 하였다.
이에 발맞춰 플로리다 주에서 가격폭리처벌법을 집행하려 하자 일부 경제학자들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공정한 가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가격은 도덕적이고 신성한 것이 아니며 수요와 공급이 달라지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기에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가격폭등은 탐욕에 의한 것일 수 없다고 하였다. 자유시장 경제학자, 논평가들은 시장이 견딜 만한 값을 요구하는 행위는 폭리가 아니며 탐욕도 아닌 그저 자유 사회의 재화와 용역이 분배되는 방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의 재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한 쪽에서는 비상사태에서 생존을 위해 대피하고 필수품을 구하는데 돕지는 못할지언정 가격을 높여 폭리를 취하려는 것은 비양심적인 행동이며 이런 상황을 정부가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이 중요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존중해야 하기에 정부가 강제적인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정부를 지지하고 지켜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정의라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이유는 정의가 우리의 생존과 하나로 연결된 절대적 가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의미를 세 가지 정도로 분석해 본다면 행복, 자유, 미덕으로 나눌 수 있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행복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에게 행복은 부유함과 연결된 것이며 행복은 부유함에서 충족되는 항목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개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어떤 것에 고정된 가치를 부여하면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해 가격을 형성해야 하며 그것이 자유로운 경제체제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가격폭리처벌법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우선 어려운 시기에 폭리를 취하려는 행위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많은 피해를 입어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에게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자유 시장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판매자에게만 자유가 허락되었을 뿐 구매자에게는 제시된 가격이 강요된 것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의 의미 중 미덕의 측면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 본다면 탐욕은 악덕, 즉 나쁜 태도이다. 미덕이 있는 좋은 사회라면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협력해서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인류가 더 큰 집단을 형성하며 대규모 국가로, 세계를 하나의 인류로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러한 미덕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려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이 미덕인지에 대한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서로의 입장이 다를 때 미덕의 기준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렇게 모호할 수 있는 미덕을 법으로 규정해서 시행할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는 법으로 미덕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에 개입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립을 지키면서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군은 1932년부터 전쟁 중 적의 군사행동으로 다치거나 사망한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해 왔다. 이 훈장을 받게 되면 영광과 함께 많은 특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상이군인훈장을 누구에게까지 수여할 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랐다. 전쟁 중 신체적인 부상을 당한 군인들은 아주 쉽게 선별할 수 있다. 그러나 외상 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단이 어렵고 주관적일 수 있으며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여러 전쟁에 개입하면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는 재향군인 수가 갈수록 늘어가고 그들은 악몽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적어도 30만 명이 외상 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고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방부 자문단이 논의했지만 2009년에 상이군인훈장은 신체 손상을 받은 군인으로 한정하는 결정이 났다. 국방부의 이유는 적의 군사행동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고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결정은 과연 옳았는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신체적 장애를 입은 것보다 진단은 어렵지만 그 후유증은 훨씬 더 심각하고 오랫동안 한 개인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라는 특수 조직 내에서는 외상 후스트레스장애를 일종의 나약함으로 여기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 번째 예는 2008년 금융 위기 사태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 70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결정을 하였고 의회에서 승인 한 일이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끝없이 오르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부동산에 투자한 기업과 개인들이 큰 손실을 입었고 그 금액이 11조 달러, 독일-영국-일본의 연간 총생산액을 합친 것과 비슷한 금액의 피해가 한 번에 터진 것이다. 금융체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엄청난 위기는 정부의 허술한 규제와 투자기관과 개인들의 무모한 투자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정의를 따지기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 커 일단 구제금융지원으로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서 위기를 넘긴 일부 기업이 임원들에게 상여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에 최고경영자는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위기의 상황을 이겨내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상여금을 준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통제불능의 금융 쓰나미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또한 300억 달러 이상을 받아온 임원들에게 절반 수준인 160억 달러만을 지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해소되지 않았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들의 탐욕을 벌하지 않고 포상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조치로 받아들였다.
주식 거래인, 은행, 펀드 매니저들 등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는 사람들이다. 금융시장이 이들의 도덕성을 고려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복합적 원인에 의해 출렁이는 금융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이했다고 해서 이들의 책임으로만 전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임원들에게 이전 상여금의 절반을 준 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들 역시 이렇게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미리 대피라도 했던가? 어쩌면 이들 역시 피해자가 아닐까?
미국은 어쩌면 이들이 받은 상여금을 탐욕으로 보기보다는 금융시장을 실패로 이끈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닐까? 금융시장이 승승장구할 때 300억 달러 이상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그땐 그 누구도 이들이 받은 상여금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호황기 때를 이들의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 사람들이 있었는가? 성공한 사람이 많은 포상을 받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이다.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부유함,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하느냐가 핵심이다. 결국 각 개인이 불공평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이다. 이 세 가지는 정의를 고민하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서로 충돌할 때가 발생하며 우리의 의견은 엇갈리게 된다. 시장의 논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장 중심 사회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과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의 장단점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행복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삶의 첫 번째 가치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복은 풍요로움, 부(富)와 관련이 깊고 풍요로움은 분명 행복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시장의 논리가 깊이 개입된다. 두 번째로 정의를 자유와 연관 짓는 이론을 살펴보자.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에게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으며 어떠한 권력과 힘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 자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각 개인에게 자유는 소중한 것이지만 자유와 연결된 권리가 다양해서 어떤 권리가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차이가 있다. 가장 치열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유방임주의와 공평주의 진영 사이다.
마지막으로 미덕에 대해 살펴보자. 도덕적인 부분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발상은 배타적이고 강압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행복과 자유보다 미덕의 문제는 훨씬 복잡한 문제를 던져주기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우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시속 100km로 가고 있고 당신이 기관사라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저 앞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브레이크는 고장이 난 상황, 그대로 다섯 명을 크게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위기이다. 그때 옆에 비상 철로가 있고 그곳에는 1명이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그대로 돌진해서 5명에게 치명상을 입히겠는가? 아니면 우회하여 1명과 사고를 내겠는가? 사람의 생명을 숫자로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책에서는 기관사 외에 옆에 덩치 큰 사람을 밀어서 기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밀 수 있냐는 질문도 나오는데 다루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뛰어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몰라도 옆 사람을 미는 행위는 고민할 가치가 적다고 판단된다.)
가능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정의일까? 아니면 생명의 가치를 시장논리로 판단할 수 없으며 내가 누군가의 삶을 좌우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의일까?
정의에 대해 알아볼 때 미덕에 대한 부분은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서 몇 가지 더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소송의 마커스 하사는 세 명의 병사와 함께 파키스탄 국경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정찰하고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때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명이 염소 100여 마리를 몰고 지나갔다. 아프가니스탄 농부 중 한 명은 14세 정도의 어린 남자아이였다. 이들은 미군을 봤기 때문에 살려서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병사가 있었지만 마커스 하사는 자신의 기독교인이기도 하고 비무장 민간인인 데다가 한 명은 어린아이였기에 살려보네 주었다. 마커스의 결정은 옳았을까?
한 시간 반 쯤 지나 AK-47 소총과 휴대용 로켓발사기로 무장한 탈레반 100여 명이 미군들을 포위하였고 바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미군은 세 명이 숨졌고 이들을 구하러 온 16명의 미군 병사들과 헬리콥터 한 대마저 격추당해 총 19명이 사망했다. 이 총격전에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진 마커스 하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와 같은 전쟁 중에 발생하는 민간인에 대한 여러 사건들의 예는 정말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생한 6.25 전쟁과 한국군이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았다. 무모한 민간인들을 사살하기도 했고 차마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어서 살려주었다가 큰 화를 당하기도 했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여러 이견들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야 하는가? 이러한 혼란들을 정리하고 옳은 견해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답을 해보고자 한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당연히 옳은 일, 즉 정의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정의라고 여기는 가치관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해 왔으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인간, 인간이 이룬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것을 정의로 여겨 왔습니다.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과 곤충들의 본능은 자연의 섭리라고 여기면서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거나 먹는 행위는 금기시 여기고 강력하게 통제합니다. 그 이유는 전우주적 거대한 진리 때문이 아니라 안타깝지만 인간의 생존에 해를 끼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에서 생존하다가 멸종한 수많은 생명체들과 다른 행성에서 생성되었다가 멸종했을 수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인류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면 우리가 정의라고 여기는 것들은 인류 공동체의 유익에 따른 것일 뿐 그 어떤 차원이 다른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우주라는 곳에서 인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어느 정도로 가치있고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인류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종족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헌신하듯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나가야 하며 이런 논의를 하는 것도 최선의 노력에 포함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먼지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삶이 가장 소중하기에 좀 더 아름다운 세상, 좀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가 만든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이 예로 들었던 내용들을 잠깐 돌아보면 자연재해나 전쟁, 재난 같은 상황에서는 서로가 협력하고 돕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언뜻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판단이 어려워 보이지만 재난 상황에서 폭리를 취하는 행동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집단에서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 어려울 때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사건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예시인 상이군인훈장 문제 역시 선택이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전쟁이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기에 강한 정신력도 필요하지만 그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며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를 고려해 본다면 국가가 전쟁에 참여시킨 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전쟁에 뛰어든 군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명령에 의해,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터로 내몰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베트남 전투에 참전해서 희생당하고 고엽제의 후유증과 신체적 상처, 트라우마에 시달렸는가? 미국으로부터의 제안, 취할 수 있는 여러 이익과 혜택을 보고 국가를 지배하던 이들이 보낸 것이 아닌가.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젊은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 번째 금융위기를 초래한 기업 임원들이 받은 상여금 문제는 우리가 조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선택한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과 부유함을 쫓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도 치료받을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의 기본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성공한 사람이 모든 영광과 이익을 독식하는 것을 용인하기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이 된 이들이 취하는 혜택에 대해 누가 어떤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까요? 금융위기가 왔고 국민의 세금으로 위기를 넘겼다 할 지라도 일부 기업의 임원들이 발생시킨 금융위기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기업이 긴급한 상여금이 정말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금융위기가 발생시킨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의 아픔과 함께 하기 위해 사퇴를 하거나 상여금, 월급 등을 반납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요? 금융위기는 돈에 눈이 먼 모두가 만든 합작품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위기들이 어쩌면 자본주의 시장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던져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더욱더 집중하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https://www.youtube.com/@%EC%98%A8%EC%9C%A0%EC%95%88%EC%9E%91%EA%B0%80%EC%9D%98%EC%84%9C%EC%9E%AC
'책,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물 / 그림동화책 (온유안) (1) | 2024.11.29 |
---|---|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 - 2강 최대 행복 원칙/공리주의 (3) | 2024.11.28 |
비트코인 슈퍼사이클: 처리형 (0) | 2024.05.20 |
범죄도시4 : 마동석에 의한, 을 위한 영화 - 주관적이지만 냉정한 솔직 감상평 (0) | 2024.05.17 |
손실 없는 투자 원칙: 남석관 투자자의 마지막 책 (1) | 2024.02.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