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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리뷰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 - 2강 최대 행복 원칙/공리주의

by onyuan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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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4년 여름, 폭풍이 덮쳤고 미뇨넷 호는 침몰하고 말았다. 그 배의 선원 네 명은 가까스로 작은 구명보트에 의지해 남대서양을 표류하고 있었다. 구명보트에  먹을 것이라고는 순무 통조림 캔 두 개만 있었다. 육지에서 1600km 떨어진 바다에서 물도 없이 구조만을 기다리던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순무 통조림은 조금씩 나눠 먹었으나 금세 사라져 버렸고 나흘째 되는 날 운 좋게 바다거북을 잡아서 며칠을 더 버텼다. 이후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8일을 보내게 되었는데 17살 가장 어린 선원 파커가 목이 마른 것을 참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셔서 병이 났다. 파커는 다른 선원들에 비해 더 쇠약해져 갔고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가 19일째 되는 날이었다.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장 더들리는 이제 곧 죽을 것 같은 파커를 희생시켜 3명의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더들리는 기도를 한 후 칼로 파커를 죽였고 선원들은 파커의 살과 피를 나눠 먹으며 생존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4일째 되는 날 결국 지나가던 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이들은 구조된 후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감없이 진술했고 법정에 섰다. 이들은 살인자인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정했어야만 했던 안타까운 이들인가?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본다면 한 명의 희생으로 3명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3명의 가족들의 행복까지 고려한다면 이들의 선택은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비용이나 이익, 산술적인 계산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살인을 감행한 이들로 여겨질 것이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공리주의의 핵심 사상은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쾌락이 고통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옳은 행위는 공리, 즉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이다.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일체의 것들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도덕적, 정치적 삶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벤담은 교도소 운영까지 이익 창출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여 생산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민간기업이 위탁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 것이다. 또한 사회의 극빈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하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극빈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도 정이 많은 일반인들이 받을 동정심이라는 고통과 정이 없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혐오감이라는 고통까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벤담은 사회의 공리를 줄이는 문제를 해결해 다수의 복지와 행복에 기여하려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주장에 반박을 하는 이들의 주장 2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만족의 총합에만 관심을 두고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반박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쾌락을 느낀다면 고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우리에 던져 죽임을 당하고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이 정당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다수의 행복이 우선이라면 소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르 귄의 단편소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멜라스라는 도시는 신분의 격차도 없으며 원자폭탄과 같은 전쟁 무기도 없고 주식 거래도 없는 행복한 도시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행복을 위해 지하 창고에 있는 방에 한 아이가 비참하게 살아가야 한다. 창문도 없는 방에 갇힌 아이는 방치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 한다. 이것이 행복 도시의 조건이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명분 아래 소수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소설이다. 

  반박 두 번째 내용은 인간의 삶과 생명을 비용과 편익으로 분석해서 답을 얻는 방식이다. 필립 모리스라는 담배 회사는 흡연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체코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체코 정부는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용 지출의 증가가 우려되어 담배에 세금을 높게 책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면 담배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에 필립 모리스는 흡연으로 인해 체코 정부가 얻게 되는 이익을 분석하여 흡연이 손해가 아니라 이익을 본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시도하였다. 흡연자들의 담배소비로 얻게 되는 세금과 그들이 일찍 죽음에 이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의료, 연금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결국 정부는 한 해 1억 4700만 달러의 순수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과 대중은 사람의 목숨까지도 달러로 환산하는 것에 경악했고 모든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예는 1970년 미국에서도 발생하였다. 포드사에서 판매한 소형 자동차 '핀토'는 많은 사랑을 받은 차종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차는 연료탱크가 쉽게 폭발할 수 있는 약점이 보완되지 않은 채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화상을 입었다. 회사는 1대 당 연료탱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데 필요한 11달러를 절약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판단해서 사고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개선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자동차 사고로 한 해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만 자동차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속도를 급격하게 낮추지 않는다. 자동차의 속도를 늦출 경우 경제적인 손실이 더 크게 발생한다는 계산을 기반으로 교통사고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암묵적인 외면을 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경제적 수치로 환원할 수 있을까? 각 사람, 즉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노인과 청춘을 비교해서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인간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최대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자본주의 공식을 대입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며 최선일까?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비중을 높게 두지 않고 중요한 도덕적 문제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저울로만 단순하게 측정하려는 벤담의 원칙을 존 스튜어트 밀은 좀 더 인간적인 원칙을 가미해서 공리주의를 다듬고 살려내려고 하였다.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개인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유일한 행동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독립적인 행동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개인은 자신에 대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주권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결국 인간의 행복이 극대화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마저 경제적 수치로 환원하는 공리주의 사회에서 발전, 특히 경제적인 발전이 가장 중요시 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는 사실상 무시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공리주의 사회는 어떤 개인의 행복이 사회의 행복에도 유익한지를 따져서 개인의 행복을 허락하는 사회가 될 것이기에 개인의 행복은 보장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종교의 자유 역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 종교를 믿는 다수가 소수의 종교인들을 혐오한다면 다수의 공리를 위해 소수의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를 수호하려고 한 밀이 발표한 "공리주의"에서 쾌락을 우선시 여기는 인간의 행복을 저급 쾌락과 고급 쾌락으로 나눠 옹호하려고 애썼다. 물론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각기 다른데 즐거움을 느끼는 쾌락을 고급과 저급으로 구분 짓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표출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페라, 교향곡은 고급 쾌락이고 가요, 팝송은 저급한가? 고전책은 고급 쾌락이고 드라마나 유머 책은 저급한가? 셰익스피어의 햄릿보다 만화 심슨 가족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준다는 여론 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심슨 가족 만화가 셰익스피어의 햄릿보다 공리주의에 부합하니 더 고급 쾌락으로 판단되어야 하는가? 

  제레미 벤담은 자신이 죽은 후 사체를 방부 처리해서 전시해 공리주의를 굳건히 하는데 사용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의 머리 부분은 부패하기 시작했고 이를 대신해 머리 부분만 밀랍으로 만들어 붙여 두었다. 학생들은 진짜 머리를 훔쳐 대학 측에 자선기금을 요구해 얻어 내는 데 성공했는데 벤담은 죽어서도 최대 다수의 행복에 기여한 웃지 못할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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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개인의 행복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역시 조금만 깊이, 진솔하게 들여다보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는데 문제는 인류가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행복도 지키면서 공동체의 행복도 추구해야 하는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기에 서로 논의하고 고민하며 좀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고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공리주의인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옳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에도 자칫하면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이보다 나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고수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 역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으나 인간의 생명, 존엄성, 자유, 권리까지 자본으로 환산하여 계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 없다 하더라도 다수는 소수를 존중하며 신중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한 개인의 개성, 자유, 삶과 생명은 그의 어떠한 조건과 무관하게 존중받는 공동체가 인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인류는 조금씩 더 큰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생존에 절대 강자로 지구를 정복해 왔습니다. 이제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어갈 공동체는 다수와 더불어 개인도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길 기대합니다. 공리주의의 약점을 잘 보완해 나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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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안작가의서재

우리는 누구인가요? 이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 인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양을 도는 아주 작은 우주 별, 지구에 태어난 우리. 그 사는 이야기, 또는 삶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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