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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리뷰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2) : 爲政-위정

by onyuan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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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2편 위정입니다. 

 

* 북극성처럼 진중하게 빛나는 리더의 덕목

 공자가 말하길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

 

 정치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공자의 말을 살펴보기 전에 노자의 말을 보자.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작은 생선을 삶을 때에는 자주 뒤적거리면 엉망이 되고 만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복잡한 공정이다. 

  생태계, 자연계는 복잡 시스템이다. 복잡한 시스템의 특징은 흐름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어떤 모델을 제시해도 부분조차 파악할 수 없다. 분석이 쉽지 않고 어느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은 한 부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통제할 수 없기에 큰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사소로운 일들마다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하면 안 된다. 순자 역시 임금이 핵심을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상세하게 처리되고 임금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황폐해진다고 하였다.

  공자는 덕으로 정치한다고 하였다. 지도자는 진중하고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소로운 일에 휩쓸려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며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며 살아가기에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득 나의 삶을 돌아보면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본능적 필요에 충실한 채 육신의 필요를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 청춘을 보내고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후 허무함에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리더의 덕목은 비단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이며 개인의 삶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세워보셨나요? 어떤 삶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기로 결정하셨나요? 그 중심점을 여러분 자신의 가슴에 굳건하게 세워 놓으시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강요하지 않아도 규칙을 지키게 만드는 리더의 품격(道之以德-도지이덕)

 공자가 말하길 정책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피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가지런히 한다면 부끄러움이 있고 도 이르게 될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공자의 말이다. 행정 명령을 수단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리고 법률로 백성을 속박하고 형벌로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훗날 법치주의의 법가가 이 주장을 펼쳐 현재 많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덕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전제조건이 있다. 안정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인품과 덕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국가는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나라를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이 조건 위에 통치자는 덕으로 백성을 인도하고 예를 갖춘 법률을 제시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인간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소수의 지도자가 국민 혹은 인류를 대신해 중요한 결정들을 하게 되는 시스템이 이어질 것입니다. 공자가 원하는 대로 우리 모두가 덕을 쌓아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걱정이 없으며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공동체 규모가 커진 후 수 천 년이 지났지만 이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잘 교육시켜 태평성대를 꿈꿨지만 매번 실패를 경험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훌륭한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해 보지만 저마다의 이익과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 예상치 못한 지도자가 선출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공자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존경받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다른 부분들도 완벽해서 예리하고 창의적인 판단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미래를 잘 예측해서 국가의 경제, 문화, 안보 등을 완벽하게 성장시켜 나갈 수 없습니다. 아주 조금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한 개인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기란 기적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지도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경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기에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언론을 통해 국민이 예의주시하며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위대한 지도자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꿈꾸는 어리석은 생각보다 우리 모두가 항상 깨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향할 것이며 행복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효란 자고로 예법을 어기지 않으며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하는 것이다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살아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를 지내고 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자유가 효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오늘날 효도를 부양하는 거라 말한다. 하지만 공경하지 않는다면 동물을 기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것은 살아게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부모에게 예를 다 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예는 사치하는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며 형식적인 것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예를 다한다는 것은 사회와 문화적인 형식이나 보이는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부모에게 마음을 다하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겠다. 그래서 효는 자녀가 마음을 다해 모시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또한 어떤 행동이나 말이 부모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를 구분해서 부모를 위한 일이면 공경심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늘 상냥한 표정으로 부모를 대하는 것이 효의 출발점이므로 이를 명심하자.

 

  여러분은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신가요? 조금은 의아한 질문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천륜으로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으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 것처럼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싶지 않은 자녀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 역시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효도에 대해 들어왔고 반드시 해야 되는 불문률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공자 역시 효를 정말 많이 강조하고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모가 되는 세월을 살아보니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무조건적인 효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장례식장을 자주 가게 됩니다. 주변 지인들의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나이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장을 가보니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효라고 하는 자녀의 숙명적 과제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부모를 잃은 자녀들의 모습과 태도는 정말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반영한 모습을 숨길 수 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부모를 떠나 보낸 슬픔의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라야 효심이 깊은 사람이며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를 다했을까요? 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녀에게 효심과 성품이 형편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자녀로 살아봤고 자녀를 키워보니 자녀는 부모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게 되는 본능보다 자녀가 부모를 따르고 사랑하는 본능 역시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더 클 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가지게 된 많은 단점과 상처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녀에게 아동학대인지도 모르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또한 배우자가 주는 스트레스를 자녀에게 풀고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도 자녀에게 풀며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로 인해 자녀에게 과한 체벌을 가하기도 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다 받으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랑한다며 안기는 자녀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생존을 위해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해맑은 마음과 눈동자는 분명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줬을 것입니다. 

  자녀가 효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물론  좋은 부모에게서도 불효자가 나오기도 하겠지만 그 확률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작은 소견과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자녀는 부모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키웠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정확하게 보이니까요. 결국 자녀가 불효자라면 부모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자녀와 함께 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자녀는 본능적으로 안다고 합니다. 자녀와의 행복한 시간을 자주 보내시나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하더라도 진심은 전달됩니다. 가정을 먹여 살리느라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자녀와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은 전달이 됩니다. 또한 여러분의 인격과 성품이 조금도 걸러지지 않고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여러분도 성장하면서 온전한 양육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여러분 자신이 가지게 된 안 좋은 습관, 성격, 성품들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다할 때까지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매일 노력은 할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온전한 어른,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는 효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부모이상으로 사랑합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깨는 것은 대부분 부모의 양육태도와 마음, 무지함 그리고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불편한 소식들이지만 성적 본능에 이끌려 원치 않는 생명을 잉태해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부모들, 자신의 갓 태어난 아이를 돈도 필요하고 키울 형편이 안 된다며 매매하는 부모들, 심지어 낳은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들, 자녀를 보육기관 등이 방치한 채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잊은 채 살아가는 부모들, 키우기는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성품과 나쁜 습관으로 인해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놓고 마음과 생각이 점점 더 굳어져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효를 강요할 수 있을까요?

  하얀 도화지를 안고 태어난 자녀에게 효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더욱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물과 식물, 모든 생명체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게 될 분들이거나 현재 자녀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이라면 세상에서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많은 사랑을 올바른 말과 행동으로 전해주시고 20년 남짓 되는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 노력으로 채워진다면 어느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위해 사랑으로 노력하고 헌신한 부모를 어느 자녀가 외면하고 불효를 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자녀로서 살아봤고 누군가의 자녀이지 않습니까. 현재의 여러분 성품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마시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통찰해 보시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상대의 인품을 파악하는 공자의 통찰력(人焉搜哉-인언수재)

  공자가 말하길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이유를 살피고 편안함을 관찰한다면 자신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느냐?  

 

  상대방을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대답으로 공자의 통찰력이 담겨 있는 문장이다. 공자보다 100년 후에 활동한 맹자는 사람을 알아볼 때 눈을 보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했다. 눈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비해 공자는 맹자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고 판단하려고 했다. 그의 행동을 살펴보고 편안함을 관찰하라고 한다. 평소에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그가 편안할 때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참모습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배우자를 선택할 때 많은 실수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보내고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판단력도 흐려지고 문제가 인식되더라도 결혼하고 서로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버린다.

 

  사람들이 도시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다양한 생각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가지는 것은 더욱 중요해 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나 그중 진실이 무엇인지도 살펴가며 수용해야 하고 놀랍도록 진화하는 각종 사기와 유혹들이 즐비한 세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AI 시대를 준비해야 하고 걱정스러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알아보는 통찰력도 더욱 중요해졌고 세상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의심이라기보다는 신중함을 갖추고 사람을 상대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솔직하고 진솔한 사람이라고 해서 상대방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니며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사실은 좋은 친구를 만나 사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순수한 것도 있지만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학교, 모임, 회사 같은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어울린 것이지 그들 모두를 친구나 특별한 인연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만큼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가 최악의 모습을 경험하기도 하고 사람이 1년, 5년, 10년을 만나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는데 좀 더 신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으신 분이나 결혼을 아직 안 하신 분이 계신가요? 저자가 논어 중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의 글을 다룰 때 결혼을 다룬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처음에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다음으로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배우자의 선택은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서 인생 최대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결혼은 당사자 둘 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가족이 만나는 것이며 새로운 존재인 자녀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잘못한 결혼은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부디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도 짧은 인생,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공자가 말하길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스승이 되고자 한다면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공자가 많은 사람에게 스승으로서 더 전파되기를 바란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가 3천 명에 육박하자 한계를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공자에게 자신은 훌륭한 스승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자 공자가 이 말을 해 주었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것을 깨닫고 일깨워주는 사람도 얼마든지 스승인 것이다. 

 

  스승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어떤 깨달음이나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인 것 같지만 우리 주변에 스승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떨어지는 물방울도 누군가에게는 큰 깨달음을 주며 작은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세 명이 걸어갈 때 그 중 한 명은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 주변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장 멋진 스승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주변의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최고의 스승이 되어 많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저에게 친절한 한 마디를 건넨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 쉬지 않는 벼랑 끝에 핀 들꽃이나 바위틈을 쪼개어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들은 저에게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가을이면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도 붉은빛으로 다가오는 노을도 보일 듯 말듯한 초승달도 저에게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들이 있으며 자신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 최고의 스승입니다.

 

  *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군자불기)

 

   공자의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군자는 그릇, 항아리이다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어떠한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사람으로 연상이 됩니까. 반대로 인간이 그릇, 항아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느껴지나요. 굳은 상태가 아니니 필요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바뀔 수도 있고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창조할 수도 있다. 공자는 바로 이것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정치가의 틀에 갇히지도 않았고 스승의 역할만을 수행하지도 않았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공자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에서 배우고 위에 이른다고 말했다. 

 

  공자의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릇이 되어 갑니다. 인생을 산 그대로의 모양이 점점 굳어져 우리 자신이 되어 버리고 그 속에 갇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전부인 양 확신에 차 남을 삶을 살아가다가 생을 마칩니다. 말과 행동도 하던 습관대로 굳어져 버리고 생각과 가치관도 완고해지며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과신하여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군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항상 깨어 있어 부드럽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새로운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사람입니다. 몸은 굳어가고 노화를 이겨내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항상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신념과 믿음에 갇혀 소중한 인생을 안타깝게 산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얼마 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 교주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 천 년 동안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있어 왔던 일입니다. 아마 인간이 살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스스로 선택했다면 최고의 인생을 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뇌를 당했거나 비판적 사고 능력 없이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이용을 당했다면 정말 안타까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우리가 현재 확신하고 있는 것조차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우주, 그리고 우리 눈에 움직이는 태양과 별, 달, 천동설을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먼지보다 작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었고 지구는 쉼 없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에 불과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역사 가운데 엄청난 충격을 준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진화론일 것입니다. 진화론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다윈은 살해의 위협을 받으며 평생을 힘겹게 살았습니다. 진화론 역시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또 언제 우리가 확신했던 것에 도전을 받을 지 모르며 그 새로운 것을 수용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세상, 인생, 사람들, 나 자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끊임없이 통찰해 보는 삶을 살아야야 할 것입니다. 이에 알맞은 공자의 말이 다음 제목과 이어집니다.

 

* 배우되 부지런히 생각하고 생각하되 배움을 게을리하지 마라(思而不學崱殆-사이불학즉태)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명문장이다. 공자는 배움과 관련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이고 둘째,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고정불변한 진리는 없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진리를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고찰하며 나아가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우면서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면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인생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내용처럼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배워야 합니다. 이것만이 그나마 우리가 가장 유연하게 세상을 알아가며 살 수 있는 길입니다. 현재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궁금증들이 배우면서 생각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시대적 한계가 있고 개인적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돌파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유연하게 열린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생각하며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가장 현명한 삶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남의 이야기에 의존해서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거나 잘못된 신념과 확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비판인 자기비판 능력도 갖추게 되어 자신의 인생을 본인이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다(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공자가 말하길 안다는 걸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아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해낼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데 모든 걸 다 안다고 자만할 때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우리는 우리를 속박하는 많은 것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잘못된 지식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다. 우리를 무뜨리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자만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성장의 기회가 있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자신의 무지함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어느 한 분야를 깊이 공부하면 교만해짐과 동시에 겸손해집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하고 연구했기에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지만 반대로 너무나 다양한 분야들이 존재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겸손해지기보다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교만해질 위험에 빠집니다. 인생도 조금 살아봐서 많은 경험이 쌓였다고 생각하고 공부도 할 만큼 해서 사회적 위치도 높아지면 겸손하기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작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지구라고 하는 작은 행성에 갇혀 있고 인간의 뇌라고 하는 한정된 능력 안에 갇혀 있기에 수 천 년의 지식을 쌓아 전수하고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마저도 언제든 버리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항상 배우고 생각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 정치는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닌, 영향력을 펼치는 일이다(孝乎惟孝-효호유효)

  누군가 공자에게 선생님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오직 효도 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는 것도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그것만이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정치를 그 어떤 일보다 명예롭고 위대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자는 정치가가 되는 것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공자는 관직이 없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현인이었다.

 

  인간이 점점 더 큰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시작한 이후 공동체에 필요한 모든 일을 전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처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를 선출하기 시작했고 대표로 선출된 사람은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일까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정권한이 주어졌고 이것이 권력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더 큰 권력이 주어졌고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참 많은 다툼과 전쟁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역사를 써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든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공동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면 서로의 입장과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여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아마도 인간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표자로 선출된 사람이 어떤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결정권한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가능하다면 가급적 좀 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가지고 선한 양심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좋은 대표자를 선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배우고 생각해서 옳고 바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교육이 결정한다고 봐도 될 만큼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위해 공동체와 개인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마땅히 나서야 할 일에는 칼을 뽑아라(見義不爲 無勇也-견의불위 무용야)

  공자가 말하길 의로움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건 용기가 없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은 지, 인, 용의 세 가지 도를 지켜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다.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땅히 나서야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의로운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용기를 가지고 칼을 뽑는다고 해결이 된다면 누가 그 용기를 내지 않겠습니까? 의로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용기를 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을 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피할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서는 이가 있습니다. 공자의 이 말을 좌우명으로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거나 여러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자신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그들의 용기로 인해 조금씩 변해왔고 급격히 변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부끄럽게 하는 사례들이야 너무나 많지만 두 가지 정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통치자들이 불합리하게 국가를 운영할 때 무모하지만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가는 즉시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공권력을 사용해서 무참히 학살하고 공포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에 반역죄인으로 낙인찍혀 역사에 남겨졌습니다. 왕권 시대, 독재시대에는 국가를 상대로 용기를 내면 죽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도, 중국도 그런 형국입니다. 한국 또한 그랬습니다. 다행히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개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교황이 내한하는 역사적인 기회가 찾아와서 민주주의 운동이 성공했지, 만약 탱크와 총으로 진압해도 그 어느 나라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이어었다면 무모하게 용기를 낸 사람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쨌든 여러 상황들이 독재를 무너뜨릴 기회를 안겨 주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외친 사람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죽었고 고문에 시달려 쓰러져 갔습니다. 이들의 용기 앞에 숙연해지며 무자비한 진압과 고문이 무서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소리 없이 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의 약자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의 형편과 그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 자신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소리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개인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도와주고 있는데 불평보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합니다.

  용기는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할 때 외면하지 말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향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라고 하는데 이것을 강요한다면 아이들을 죄책감에 빠뜨리는 폭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반 친구가 위기의 상황에 놓였다면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며 가능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마디 외쳤다가 폭행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데 그 공포를 청소년들이 이기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요? 교육부, 학교, 경찰이 나서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참 많은 상황들이 떠오르네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어쨌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여러 질서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룬 것임을 잊지 말며 그들의 용기 앞에 또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기회가 닿는 대로, 혹은 관심을 가지고 기회를 만들어 선한 손길을 따뜻하게 내밀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아주 미약하겠지만 용기를 내며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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