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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리뷰

노자의 말, 도덕경(1) : 道經

by onyuan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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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지은이의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글들이 한 사람의 사상가에 의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노자라고 판단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노자는 실존 인물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죽은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논어는 공자라는 실존 인물과 그의 제자들의 이름과 언행, 방대한 수의 지명과 인명이 나오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 두 책이 오늘날까지 동아시아의 사상을 이끄는 위대한 수레의 두 바퀴 역할을 해왔습니다. 

  2천5백여 년 동안 내려온 노자는 특유의 역설적인 어법으로 세상의 대립과 모순을 설명하고 있으며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수많은 해석을 낳으며 재생산되어 왔습니다. 노자는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중 하나입니다. 1708년 라틴어 번역본이 나온 이후 전 세계에 널리 소개되며 논어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노자라는 책이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이유는 단순한 사고의 유희가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전국 시대를 살았던 처세의 지혜이자 통치 이론이지만 동시에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인생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보편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처음 노자의 글을 접하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추상론이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글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자신을 반추하며 삶을 보다 윤택하게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깊은 의미를 음미해 보는 즐거움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위대한 책 노자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당신도 그렇다.

   어쩌면 당신은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고정된 것이라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고 있는 일조차 이윽고 사라지거나 변한다.

   어떤 일이든 어떤 것이든 언제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열린 상태로 그곳에 있다.

   세상 만물은 변하고 생겨났다가 사라지므로 그 불안정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임을 이해한다면 까닭 모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세상의 모든 것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변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노자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임을 이해한다면 불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가능성으로 가득찬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세상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멋지게 미소 한 번 짓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불안해하지 마시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존재임을 이해하고 확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 내일을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게 돕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 그러면 까닭 모를 불안들이 눈 녹듯 녹아 사라질 것입니다. 일시적인 기분으로 끝나나요? 그러면 방법이 있습니다. 자주 하시면 됩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의 삶을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온전히 이해하고 응원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만 존재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지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나요? 인생의 폭풍우가 가지고 오는 두려움을 연약한 우리가 홀로 맞서기 쉽지 않지만 힘 내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나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의 풍요로움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인생의 불안정함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2. 이 세상에는 본래 선악도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아름다움과 추함도 없고 선함과 악함도 없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기에 추하다는 개념이 생겨나고 어떤 것을 선하다고 여기기에 악하다는 개념이 생겨난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나은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지 않다.

  모든 만물은 극단적인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 때문에 성인은 만물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  

  만물을 잉태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그 능력을 뽐내지 않는다. 

  무릇 만물의 움직임은 그 시작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글은 25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선악에 대한 믿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데 당시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선함은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며 악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생존과 보존에 유익하면 선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선과 악에 상상력이 더해져 천국과 지옥, 천국에 있는 신, 지옥에 있는 신 등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고 믿기도 합니다. 선과 악뿐 아니라 아름답고 추한 것, 우열도 없는 것이 이 세상 아닐까요? 불가지론의 주장처럼 우리 인간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존재이며 이 세상을 초월한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알아내고 안개처럼 우리를 덮고 있는 미신들을 걷어내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 가고 주어진 짧은 인생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천국과 지옥, 선과 악에 대한 믿음을 강요받을 때 도서관에 가서 이와 관련된 서적들을 섭렵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몇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신가요? 그 믿음의 정도와 신앙생활에 충실한 정도가 어느 정도이신가요? 이 세상은 극단적인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는 노자의 말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신앙, 믿음만이 유일하다는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에 의지하고 무슬림들도 자신들의 신에 의지해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 다 동일한 신을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아브라함이라는 조상의 자손들이니까요.

  성인(聖人)은 만물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노자의 이 말은 정말 깊고 넓은 통찰력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국 무언가를 선택하고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것들만이 유일하다는 생각은 결국 타인에게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할 위험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과 세상 사람들을 한 번 자세히 보시면 우리가 가지게 된 모든 지식과 신앙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 진 것들입니다.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문화 속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다른 종교를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대부분은 부모와 사회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믿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종교학, 종교철학 등을 깊이 공부해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학습하고 연구한 후 자신의 종교나 신앙을 선택했을까요? 종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자신이 접하게 된 종교를 의심해 보지도 못한 채 확신하여 자신의 삶과 자녀의 삶을 바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들에게 전파하고 강요하고 심지어 폭행과 살인까지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인류가 쌓아 놓은 지식과 정보가 현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보잘 것 없었던 2500년 전에도 인간은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지식이 많은 것과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학습 수준이 높을수록 현명한 판단을 내릴 확률은 확실히 높아지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노력만 한다면 노자가 말한 성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3. 만물은 도에서 나온 것이다.

  우주 만물은 도에서 나온 것이다. 도는 비어 있기에 만물을 포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

  도는 심오하고 광대하며 그 작용은 그침 없이 계속된다. 이 힘이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나 세상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하늘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도란 세상 만물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힘이다. 이 힘은 참으로 깊고도 고요하다.

  도는 항상 그자리에 있다. 모든 만물의 이치이자 법이다.

 

 여러분 道(도)가 무엇일까요? 노자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서는 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도는 천지 만물의 근원이기도 하고 모든 법칙이기에 하나로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는 절대적인 진리이며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영원불변하며 존재의 근원이자 그 어떤 존재가 아니기에 이름도 붙일 수 없으며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그 신비로운 근원을 언어로, 문자로 표현을 해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고른 것이 道인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정리는 해보지만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주의 끝이 상상이 가지 않으며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유한한 우주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입니다. 빅뱅을 일으킨 근원도, 빅뱅이 발생하게 된 공간도, 심지어 빅뱅이 맞는지 조차 알 수 없기에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함축하고 있는 단어인 道를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도라는 단어를 쓴 노자도 이 정도 이해하고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도 인간에 불과했으니까요. 뭔가 더 엄청난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웅 신화를 창조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모든 신비와 비밀을 꿰뚫어 알아낸 누군가라도 있기를 바라는 마음, 신의 아들이라도 내려와 모든 것을 알려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노자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근원, 인간과 모든 존재에 대한 근원, 존재이유 등은 우리가 너무나 알고 싶은 것들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4. 잘 살고 싶다면 감성을 풍요롭게 하라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풍요로운 감성만 지니면 된다. 

  온몸으로 세상 만물을 느끼면 자신이 어찌 행동하면 좋을지, 어떤 이가 되면 좋을지 저절로 알게 된다.

  이렇게 풍요로운 감성으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仁-인이라 부른다. 인간뿐 아니라 천지 역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천지를 관장하는 도의 작용은 마치 풀무 같다. 실체가 없는 공기와 같은 것이 순환하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힘이 용솟음친다. 이는 인이 널리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있으며 끝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인간은 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을 잊곤 한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영원한 도를 안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다하여 온갖 세상일을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사사로움 없이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에 국한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일부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느끼고 풍요로운 감성을 하나씩 음미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정말 잘 사는 것입니다. 그 상태를 노자는 인(仁-어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온유하고 부드러운 감성이 가득한 삶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함이 느껴집니다. 노자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질 인을 가지고 있는데 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희망적이며 기쁜 이야기입니까?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다만 잊고 살아갈 뿐이라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시고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에 반응해 주시고 안아주시고 스스로를 격려해 주세요.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며 정말 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5. 그저 살면 된다.

  천지는 영원하다. 천지가 변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인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천지는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오래 산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저 살면 된다. 그러면 오래 살 수 있다. 

  하여 지혜로운 자는 천지와 똑같은 길을 걷는다.

 

  그저 살면 된다. 이 글을 읽은 후 한참동안 책을 덮고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진솔하고 정직하며 담백한 말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궁금해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수 천 년을 고민해 왔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여러 주장들이 있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들의 믿음과 확신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가장 솔직하고 가장 이상적인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존재이며 알 필요도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살아가면 되는 존재, 그런 세상인 것입니다. 

  삶의 고난, 고통, 애환을 아무리 호소하고 통곡을 해도 결국 그저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을 아무리 힘들게 해도 슬프지만 우린 그저 주어진 대로 살면 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존재입니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억울함과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컸다고 한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 우주는 잠잠합니다. 멸종한 생명체들이 겨우 이런 결말로 사라질 거면서 왜 우리가 존재했냐고 아무리 아우성을 피워도 땅 속에 흔적을 남긴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저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살면 그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슬프게 다가오시나요? 그러나 이것이 인간이 직면한 가장 솔직한 상황이며 슬프지만 수용해야 할 진실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영생을 꿈꾸며 인간의 존귀함을 부르짖는다해도 그게 사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과 우주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진실들이 많으며 여전히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사후세계,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해도 인간이 온 우주와 온 세상을 창조해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린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를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말이지만 참으로 솔직한 말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보아요. 그렇게 그냥 살면 됩니다. 

  

6. 최고의 선은 물을 닮아 있다.

  최고의 선은 물을 닮아 있다. 물은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고요하여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꺼리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가장 낮은 곳에 머물기에 도에 제일 근접해 있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품은 어쩌면 물과 닮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물과 같은 성격을 우리는 온유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물의 성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간은 온유한 성격을 가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이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을 누구나 좋아하지만 내가 온유한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왜 물이 70%인데 물과 같은 성품을 가지지 못했냐고 질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온유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많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거칠다는 표현을 붙입니다. 거친 인생이 우리를 물과 같은 성품과는 멀어지게 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보니 배고픔에 힘들게 되고 미성숙한 양육자의 올바르지 못한 양육환경에 노출되기도 하고 1년이 지나서 겨우 걷습니다. 이후 그저 신기해서 만지고 신기해서 먹어보려다가 혼나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규범을 어기면 혼나고  무서운 경쟁에서 밀리면 먹고사는 문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며 가난은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온갖 분쟁과 사기, 범죄,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행복보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많은 세상을 마주합니다. 가족, 친구, 게다가 태어난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에 노출되면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우리의 인생에서 온유함을 유지하기가 가능할까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잘 피해갔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강제적인 이별도 겪게 되고 자신도 각종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온유함을 가지라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어 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잘 이겨내고 인간으로서의 온유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노력한다면 물과 같은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하고 완전한 온유함, 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할 것 같다고 포기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물도 바위를 만나거나 낭떠러지를 만나면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동칩니다. 우리 역시 힘들고 어려울 때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동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내 잠잠한 물결을 유지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우리 역시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그 노력의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 바다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7. 지나친 자극은 마음을 어지럽힌다

  온갖 종류의 화려한 색채는 눈을 멀게 하고 말을 달리는 사냥처럼 격렬한 행사는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귀한 재물은 행실을 바르지 못하게 하고 맛좋은 산해진미는 입맛을 고약하게 하며

  화려한 가락의 음악은 귀를 미치게 한다.

  이렇듯 자극은 사람의 혼을 어지럽게 하여 자극받은 이는 본래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되고

  눈을 돌렸다는 사실에서조차 눈을 돌린다.

  하여 지혜로운 자는 사람들을 다스릴 때 그들의 감각을 자극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의 본래 문제와 마주하게 되고 사람들의 생활이, 그리고 심신이 평안해진다.

 

 이글은 2500년 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현대 사회의 모습을 경험한 사람이 쓴 글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역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그 본성은 크게 변한 것이 없으며 우리의 문화와 사회는 인간의 본성 안에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오래전 글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큰 울림과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자극에 약합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본능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가 쉽게 뿌리치지 못합니다. 화려한 색채에 눈이 멀고 격렬한 행사나 광기어린 음악에 정신을 놓아버립니다. 로마시대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대결을 수많은 관중들이 구경 했던 것처럼 현대에도 피가 나고 극심한 고통을 주고받는 격투기를 보려고 구름관중이 찾습니다. 그리고 열렬히 환호합니다. 값비싼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과분한 지출을 하고  맛있는 것을 찾아 어디든 가다가 결국 맛없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인류를 가장 위협했던 것이 굶주림이었고 현재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맛없는 음식을 혐오하기까지 하니 인간이 한 번 자극에 노출이 되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자극은 중독을 유발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고 국가가 범죄로 지정하고 벌을 내려도 강한 자극 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많은 사람들을 접합니다. 정치를 해본 이들이 대중을 동물에 비유했는데 조롱으로 들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을 비하하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인간의 본성을 경험하고 그 특성을 알게 된 사람이 경솔하게 말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유나 즐겁고 색다른 일이 없어 지루하다고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자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지혜로운 자가 되어 우리 자신의 본래 문제와 마주하고 생활과 심신의 평안을 유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짧은 인생 동안 맑고 평안한 심신을 잘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것이 시작입니다. 

 

8.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신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이 없는 형체이며 형체도 없는 형상이라

  신비가 어디에서 작용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이는 신이 계신 곳을 묻는 것과 같아서 이곳이라 가리켜 나타낼 수 없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가리켰다 해도 신비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뒤를 따르려 해도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 앞에서 맞이하려 해도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비를 이해할 실마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실제로 드러나 있는 세상 만물, 그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태초의 시작인 도(道)의 규율을 알게 되리라

 

  인류가 신비 앞에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근 200년 간 급격한 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지구라는 한계 안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를 돌고 있는 달까지 발을 내디뎌 보았고 망원경을 지구 주위에 올려놓고 신비로운 우주를 바라보는 정도입니다. 우주의 신비를 많이 밝혀낸 것 같지만 하나를 밝혀내면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드러나는 수준입니다. 빅뱅이론으로 우주의 시작을 설명해보고 있지만 그 시작의 원인이 된 물질, 존재는 무엇이며 그것은 왜 존재했고 왜 폭발했는지, 더 어려운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정말 알고 싶은데 알 방법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한계를 마주합니다. 개미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구에 살아남아 노력해도 지금 우리가 아는 수준만큼의 우주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것처럼  인간도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우주라는 공간 속에서 미약한 지능을 가지고 연약한 지구에 갇혀 있으니 무엇을 얼마나 알게 될지 모르습니다. 그저 사라질 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는 존재로 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작은 희망이 있다면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눈앞에 실제로 드러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신비를 이해하고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지만 중요한 단서이길 바라고 이것을 이해해 언젠가 신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각종 종교에서 신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주장하는데 이것이 다양함에 머물지 않고 혼란을 초래하고 전쟁을 유발하여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인간이 신비 앞으로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가갈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9. 세상은 결국 근원으로 돌아간다

  만물은 태어나서 활발하게 움직이다가 머지않아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

  냉정은 이 세상이 근원으로 돌아감을 이해하는 태도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알면 관용이 생긴다.

  관용이 생기면 공명정대해지며 공명정대해지면 하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고

  하늘의 뜻을 따르면 도(道)를 따를 수 있게 된다.

  도를 따르면 영원히 평생토록 위태로울 일이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결국 모든 것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스승입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에 지쳐 세상을 깊이 숙고해 보는 기회를 얻지 못해서 냉정하게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을 뿐 이 사실은 2500년 전 사람들도 깨달은 것입니다.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 세상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면 냉정함을 잃지 않고  관용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의 뜻이 존재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불안하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항상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마다 자신을 위해 결국 우리 모두는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함을 찾아 넓은 마음으로 평정심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그 일 앞에 어느 누가 초연해 질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때 느껴지는 상대적 빈곤감을 어느 누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인생이 어둡고 기댈 곳 없고 쉴 곳조차 없을 때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휩싸이는 것이 인간이며 이런 모습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해 주고 오히려 수용해 주며 자신을 위로해 주시고 한편으로는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훗날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이겨내고 견뎌내기 위해 노력한 여러분 자신에게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0. 세상은 들리지 않는 언어로 말을 건다

  세상은 인간에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언어로 말을 건다. 당신은 그 언어를 감지해야 한다.

  사나운 회오리바람도 한나절이면 그치고 거센 비도 때가 되면 그친다. 천지의 광폭함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 휘둘리지 마라. 그 현상이 이야기하는 들리지 않는 언어를 감지하라.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으면 그 얻음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잃으면 그 잃음을 받아들여라.

  이것이 도리에 부합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득실이 아니다.

  어떤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얻음과 잃음을 통해 전달되는 들리지 않는 언어를 감지해야 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자연스럽게 묵상과 명상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인간 사회가 만들어내는 온갖 소음들에서 잠시 떨어져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소리에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 안개, 피부를 스치는 바람, 떨어지는 빗방울, 따스한 햇살, 매일 다른 모양을 보여주는 구름, 파도소리, 숲소리,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모습과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보니 잠시나마 모든 근심과 걱정들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리에도 관심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있었던 많은 일들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들을 하나 하나 펼쳐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성숙해지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11. 밝은 도리를 따르라

    성인은 항상 거짓 없이 티 내지 않고 보살피며 만물이 그 쓰임을 다 하도록 이끌 수 있어 쓰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버려지는 물건이 없다. 이를 두고 밝은 도리를 따른다라고 말한다.

   밝은 도리를 따르면 선한 사람만 선한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한 사람의 귀감이 된다.

   자신이 본받아야 할 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귀감이 되어줄 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설령 지혜가 있어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니 이를 일러 뛰어난 도리라고 한다.

 

  이 글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들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다짐, 이보다 귀한 결정이 또 있을까요?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물론 인간 사회와 공동체에 유익이 되고 나아가 우리가 사는 자연 세계에 유익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한 것이 이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온 우주에 선한 일을 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국 인간 사회에 유익한 행동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선하고 밝은 도리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위해 자신의 작은 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유전자는 자신을 복제하고 멸종으로부터 종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음과 몸이 하나로 연결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에게 심리적인 위협까지도 주의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거나 다치면 육체까지 영향을 받아 결국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타인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생명체와 환경까지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한 길, 밝은 도리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높은 곳, 성공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은 많으나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목표를 세우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종교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믿게 된 신앙을 따르려는 노력이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는 선함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이를 위해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종교에 이롭기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전쟁을 불사하며 증오와 미움,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또한 한 번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면 그만 두고 다른 살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직업을 얻는 것도 쉽지 않으며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 주고 월급까지 주는 곳을 포기하고 세상에 나가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아주 큰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하게 된 종교인의 생활이 회의적으로 바뀌고 신앙이 변했다고 해도 생계를 위해 거짓으로 종교에서 기대하는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종교인들이 사건 사고를 저지르고 뉴스에 나와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인들을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종교인들 사이에도 진정한 사랑과 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든 종교인들을 특별히 선한 길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다양한 사상과 철학, 이데올로기, 주관적인 생각들, 어느 것이 선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 속에서 우리가 밝은 도리를 다하며 선한 길을 선택해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 가지에 대입해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존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숭고한 목표 아래에서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존엄함을 깊이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타인과 모든 자연을 대한다면 다툼과 분쟁, 전쟁 같은 처참한 상황은 사라질 것이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이런 선한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사람 더 이런 목표를 세운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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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요? 이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 인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양을 도는 아주 작은 우주 별, 지구에 태어난 우리. 그 사는 이야기, 또는 삶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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