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만 VS 5000명의 전투는 제갈량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 위해 과장된 전투로 보임.
기동력과 적은 수로 많은 수의 적을 이긴 전쟁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조금은 과장되었지만
제갈량의 우수한 지략이 펼쳐진 전투인 것만은 확실해 보임 -
유비는 201년 여남 전투에서 조조에게 대패한 후 근거지를 잃고 형주자사 유표에게 의지하였다.
이후 조조는 화북 평정 후 남쪽으로 진군하는데 부하 하후돈에게 10만군을 주면서 유비를 격파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때 제갈량은 관우와 장비에게 각 1,500명의 군사를 배치하여 예산과 안림 뒤쪽 산골에 매복해 있다가 박망성으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관평(관우의 양자)과 유봉(유비의 양자)에게 군사 500명 씩 주어 박망파 뒤에 매복하게 하였다.
이로써 사방을 포위하여 가운데로 들어오는 적을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위치를 잡았다.
이러한 배치를 이룬 후 조자룡(조운)은 조조의 부하 하후돈에게 진격하였다가 박망파 쪽으로 후퇴하면서 유인하였다. 하후돈은 조자룡과 유비를 정복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진격하였다.
그러나 하후돈의 부하 중에도 이를 꿰뚫어 보는 우금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하후돈에게 길이 좁고 험하고 수풀이 무성하여 적이 매복해 있다면 패할 위험한 지역이라고 충언하였으나 그의 말을 듣지 않아 3만의 군사가 전멸하였다.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의 오판으로 인생이 허망해지는 우리의 삶.
우리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없다.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숨어버리고 만다.
단 한 번의 성공을 경험하기보다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일들을 훨씬 많이 경험하는 우리의 인생.
역사는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기록된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된다.
동일한 상황이 주어졌는데 하후돈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였고 조자룡 역시 최선의 작전을 펼쳤다.
이 상황에서 우금은 위험을 감지하였다. 우금의 말을 하후돈이 귀담아 들었다면 중국의 역사가 바뀌었을까?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한 순간의 판단들이 모이고 모여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완성해 가고 있다.
우리는 이 전투를 보면서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해야 함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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