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나라는 촉, 오, 북방 민족들까지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촉이나 오나라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어하는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촉은 변방에 있었고 중원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었으며 자신의 존재와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공격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촉은 끊임없이 더 큰 상대인 위나라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였다.
유비의 뒤를 이은 제갈량은 중원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227년 위나라의 조비가 죽고 어린 황제 조예가 즉위했다.
이 때가 유비의 유업을 이을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제갈량은 북벌을 감행해야 한다고
촉의 황제였던 유선에게 조언하였다.
그리고 제갈량은 눈물로 자신을 북방전투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1년을 준비한 제갈량은 228년부터 북벌을 단행하였다.
모두 5차례에 걸쳐 죽을 때까지 공격하였다.
1차 공격 : 제갈량은 조자룡을 기곡으로 보내고 기동력을 이용하여 기산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촉나라의 마속이 위나라의 장합과의 전투에서 져 후퇴하고 말았다.
2차 공격 : 이번에는 장안을 목표로 기곡을 거쳐 진창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진창에 학소를 파견하여 만만의 준비를 다한 위나라에 또 패하고 말았다.
3차 공격 : 위나라의 학소가 병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제갈량은 기산을 기습하고 진창을 공격하려 함.
이번에는 위나라의 장합과 대릉을 물리치며 승기를 잡았지만 장비의 아들 장포가
퇴각하는 위나라를 쫓다가 부상을 입고 죽게 되자 제갈량은 큰 충격을 받고 한중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4차 공격: 4차는 위나라가 먼저 공격을 하였다.
제갈량은 위나라의 공격을 잘 방어하고 그들을 포위하여 승기를 잡았지만
한달간 내린 폭우로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날씨 때문인지 후방에서의
보급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시 한 번 후퇴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갈량은 수차례 북벌을 감행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제갈량은 3년 간 10만 명의 군사를 키우는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권과 연합하여 위나라를 공격하기로 한다.
손권은 군사를 3개로 나누어 공격하기로 하였다.
육손과 제갈근은 강하를 공격, 손소와 장승은 광릉을, 손권 자신은 합비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위나라의 조예는 이 소식을 듣고 강하에 유소를 보내고 양양에 전예, 조예 자신은 만총과 함께 합비를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손권은 합비에 도착했지만 조예 군사가 도착했다는 것을 몰라 방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이를 간파한 조예는 기습을 하여 적벽대전과 유사하게 불화살로 선박과 본진을 불태웠다.
이 기습으로 위나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손권의 본진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자 오나라의 다른 곳에서도 전쟁 사기를 잃어버리고 후퇴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제갈량은 북벌을 포기하고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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