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제4장 식량 생산의 기원
식량 생산, 즉 경제는 문명이 발전하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언제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약 7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들이 유인원으로부터 분기된 이후, 약 699만 년이라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며 살아왔다. 농사를 짓고 야생 동물을 가축화 하기 시작한 것은 110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점령당할 때까지 농사를 짓지 않고 있었다.
동물의 가축화와 농사가 문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먹을 것이 있어야 인구가 증가할 수 있다. 인구는 인류의 문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냐에 따라 대륙별 문명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좁은 면적에서 많은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농사를 지어 생산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해야 복잡해진 사회가 구축이 되어 정치, 경제가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가족단위, 소규모 집단은 정치와 경제가 발달할 필요도 없으며 불가능하다. 눈을 감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일정한 넓이의 땅을 생각해 보자. 그곳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의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먹을 것을 찾아 어디까지 다녀야 할지 막막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바꿀 큰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농사를 지으며 조금씩 공동체의 수를 키워 가다가 가축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획기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가축은 고기, 젖, 비료, 털과 가죽 그리고 노동력을 인간에게 제공해 주었다. 초기에는 가축을 농사에 활용하지 못했지만 쟁기를 만드는 기술을 갖추면서 가축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경작지가 크게 증가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거친 땅을 경작지로 바꿀 힘이 부족해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나 소, 말, 순록, 야크, 낙타 등 힘이 강한 가축들을 활용하게 되면서 기존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땅을 경작지로 탈바꿈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작지가 넓어지면서 수확량은 크게 증가했고 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할 때에는 계절과 상황, 환경에 따라 계속 이주하며 살았어야 했기에 잉여 식량을 저장할 수 없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걸어서 제법 멀고 험한 길을 이동하며 살아갔기에 자녀를 많이 낳을 수도 없었다.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어야 비로소 다시 자녀를 낳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농경 민족은 식량 생산만 충분히 된다면 1~2년 터울로 자녀를 낳아 공동체의 수를 늘려갈 수 있었다.
또한 가축은 농사하는데에만 사용되지 않고 운송수단과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힘이 세고 강한 가축들은 훌륭한 운송수단이 되어 주었으며 전쟁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다. 지구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정복한 몽골 대제국의 예만 보더라도 가축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했는지 알 수 있다.
끝으로 가축화는 뜻하지 않은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바로 인간 사회에 가축화된 동물들로부터 진화한 병원균이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은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병원균이었는데 가축화되면서 인간에게 옮겨졌고 진화했다. 처음에는 인간도 희생되었지만 저항력을 가지게 되었고 저항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들어가 심한 경우 전체 인구의 99%를 감염으로 몰살시키기도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가축화를 통해 얻게 된 무서운 무기였다.
이렇게 살펴본 바와 같이 가축화와 농사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그로 인해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제5장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지구를 살펴보면 여러 이유로 식량 생산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지역이 있다.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을 가진 지역에서 식량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농업이나 목축에 있어 생태학적으로 매우 적합한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최근에까지 식량 생산이 시작되지 않은 곳은 우리가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 서남부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일대의 지역이다. 여기서 또 놀라운 것은 농업 발원지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곡창지대가 아니라 다소 건조하고 생태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 편에 속하는 곳들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라크와 이란, 멕시코, 안데스 일대, 중국의 일부 지역, 아프리카의 사헬 지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중에서도 독립적으로 농업과 목축이 발원된 지역은 몇 안 된다. 다른 지역들은 모두 자기 지역의 동물과 식물을 가축화-작물화하지 못하고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왜 농업을 하기에 비옥한 지역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지 않고 농업 한계선에 가까운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고 발전하게 된 것일까? 농업과 목축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최우선의 조건이 아니라면 독립적으로 농업과 목축을 시작한 곳과 시작하지 못한 곳은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들에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식량 생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현재까지 독립적으로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다는 증거가 확실한 지역은 다섯 군데가 있다. 그곳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는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일대와 아마존 유역, 그리고 미국 동부 지역이다. 이곳들 중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어디일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존해 본다면 식물의 작물화는 B.C 8500년경 밀, 완두콩, 올리브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동물의 가축화는 B.C 8000년 경 양과 염소를 활용하기 시작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중국의 황허강과 양쯔강에서는 B.C 7599년 경 벼와 기장, 돼지와 누에를 재배하고 키우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독립적으로 시작된 곳마다 시간의 간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서남아이사와 중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을 살펴보면 중앙아메리카는 옥수수, 호박과 칠면조를 B.C 3500년 경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고 안데스와 아마존 지역도 감자, 마디오크, 라마와 기니피그를 B.C 3500년 경, 그리고 미국 동부의 연대는 B.C 2500~2000년으로 측정되어 처음 시작된 곳과 5~ 600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농업과 목축이 시작된 지역은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곳보다 인구와 문명의 발전이 빠르게 성장했고 다른 지역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확장해 간 지역에 자신들이 생산하던 작물을 재배하고 키우던 가축들을 데리고 가서 전파하기도 하였고 현지인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내쫓은 후 자신들의 농작물과 가축만으로 대체해서 현지의 식물종과 동물들은 외면시켜버렸다.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와 양상이 이와 같이 지역마다 크게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사 시대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차근차근 여러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한 때는 모든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고 인류가 탄생한 이후 거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왜 식량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수렵 채집은 힘들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야만스럽고 짧은 삶을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렵 채집을 하며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며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해 가난할 뿐 아니라 삶의 의미조차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최초의 농경민들이 남긴 증거들을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당시 수렵채집인들보다 체격도 작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심각한 질병으로 평균 나이도 적었다고 한다. 어쩌면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업과 목축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캘리포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던 일부 원주민들은 농경민들과 교역도 하고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수렵 채집의 삶을 유지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첫째는 식량 생산이 인류의 역사적 발견이나 발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수렵 채집과 농경 사회를 극단적으로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렵 채집인들이 이동 생활을 하면서 농작물들을 관리한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계절에 맞춰 이동하였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농업을 했으며 가축을 데리고 다녔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당연히 가장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가장 확실하고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점차 진화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 집단의 가치관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된다. 예를 들어 사냥을 우월하게 여기고 농경을 경시하는 풍습이 있다거나 현재에도 있는 소, 양, 돼지 또는 물고기나 뱀, 농업으로 얻게 된 작물 등 어떤 특정 음식을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수렵 채집의 삶을 더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수렵 채집과 식량 생산은 경쟁적 관계였기도 하고 상호 보완적 관계였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관계가 유지되다가 최근 1만 년 동안은 수렵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 급격하게 전환되었다. 이 이유에 대해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중요도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동일하게 주장하는 몇 가지 원인을 예측했다. 첫째, 기후와 환경의 변화로 야생 동물과 식물이 줄어들거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대형 포유류들은 점차 사라져 대부분 멸종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기후와 환경 변화보다 인류의 확산이기도 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모아새 등 그 지역의 많은 조류들을 멸종시켰고 바다표범의 개체수를 급감시켰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도 야생 가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동물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인류는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대상부터 표적으로 삼았을 것이며 손쉬운 사냥감이었을수록 빠르게 사라져 갔을 것이다. 둘째, 이와 반대로 인류가 작물화할 수 있는 능력이 발전하여 야생 식물에 불과하던 식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량 생산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오래 저장할 수 있는 토기 등의 등장은 수렵 채집보다 안전하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인구는 증가하게 되었고 점차 인류는 식량 생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사회를 만들어 냈다. 물론 수렵 채집의 생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최근까지 고수하고 있었던 지역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리지 못했고 수렵 채집에 필요한 도구 이외에는 발전시킨 도구가 없었고 가축을 키우면서 얻게 된 병원균에 내성도 없어서 식량 생산을 한 이들에게 점령당하거나 쫓겨나면서 강제적으로 식량 생산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제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인류가 재배하기 시작한 식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작물화가 되었을까? 여러분이 등산을 한다고 상상한 뒤 마주치게 되는 식물들을 상상해 보라.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야생 식물은 총 20만 종이나 있으나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하다. 그리고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식물들도 있다. 그렇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며 다른 동물들이 무엇을 먹는지 관찰한 후 섭취하고 소화되지 않은 식물과 과일들의 씨앗이 배설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인류는 재배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배설 장소는 의도치 않게 최초의 품종 개량 실험실이 되었다. 인간이 먹지 못하고 뱉은 씨앗과 여러 남은 것들을 버린 장소는 최초의 농업 연구소가 되어준 셈이다. 이곳에서 자라난 식물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을 것이다.
한 품종 안에서도 다른 결실을 맺어 인간은 좀 더 유리한 품종을 선택했으며 맛도 좋고 수확량도 많으며 재배하기 쉬운 것부터 적극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장에도 유리한 품종이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밀, 보리, 콩류, 벼 등이 1만 년 전 최초로 재배된 야생 식물들이다. 이후 심으면 적어도 3년 이상을 기다려야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올리브, 무화과, 포도 등이 B.C 4000년 경 작물화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다양한 야생 식물들을 작물화해 나갔으며 생산량이 증가하고 농업에 필요한 기술들이 뒷받침 되면서 재배하기 더 어려운 야생 식물들까지 작물화에 성공해 갔다.
인류는 재배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고 돌연변이도 발견하고 수확량과 맛이 더 우수한 종류를 선별하여 인위적으로 선택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어 왔다.
제8장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20만 종의 야생 식물 중 인간이 작물화한 것은 수백 종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에서도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류, 감자, 고구마, 사탕수수, 바나나 등 12종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야생 식물을 작물화하기 시작한 지 수 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2종만이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렵 채집에서 농경 사회로의 완전한 전환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작물화를 가장 빨리 성공했고 가장 다양한 식물을 작물화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살펴보자. 이 지역의 이점은 우선 기후가 식물을 작물화하는데 유리했다. 겨울은 온난 다습하며 여름은 길고 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했다. 긴 건조기를 견딘 후 비가 내리면 빠르게 성장하는 식물종이 적응했는데 이에 적합한 것이 바로 곡류와 콩류들이다. 이들은 한해살이 식물들이었고 이런 기후에 수확량이 많으며 인간이 섭취하기 좋은 안성맞춤의 식물들이었다. 두 번째 이점은 인간이 작물화하기 유익한 식물종이 알맞은 기후 덕분에 인간이 농경화를 시도하지 않았을 때부터 군락을 이루어서 채집하기 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야생 상태에서도 생산성이 높을 정도였으니 인류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지역이었다. 세 번째 이점은 이곳에 서식했던 식물들은 자웅 동주형 제꽃가루받이 식물의 비율이 높았다. 초승달 지대에서 최초로 작물화된 8종의 중요한 농작물은 모두 제꽃가루받이 식물들이었다. 번식에 아무래도 유리한 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분명 큰 이점이 되었을 것이다.
왜 초승달 지역에서 식물의 작물화가 가장 먼저 진행되었으며 가장 다양한 종들이 경작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고려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이와 같은 지역은 지구상에 네 군데 더 존재하며 그곳은 바로 캘리포니아,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야생 식물을 작물화 하는데 기후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유사한 이 지역들에서도 동일하게 작물화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발생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서는 일찍 시작되기는커녕 토착적인 농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훗날 이 지역들을 방문하거나 침략한 이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이 의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시 초승달 지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초승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도와 지형 변동이 심해 다양한 기후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 지역에 다양한 기후가 존재하니 당연히 다양한 식물종이 서식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렸는데 그 한 예로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볏과 식물 중 32종이나 이 지역에 서식했다. 이에 비해 칠레는 2종, 캘리포니아와 남아프리카는 1종,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는 전무했다.
인류가 수렵 채집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각 지역마다 농업과 목축업의 시작이 왜 달랐는지 알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어느 민족의 우월함 때문도 아니며 식물들의 문제도 아닌 환경적 조건이 절대적인 이유였음을 인식하고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길 바란다.
제9장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고 했다.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경제력, 성적 매력, 자녀, 종교, 친인척 등의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엇비슷하거나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이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결혼 생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생 동물들을 가축화하는 과정을 알아보는데 톨스토이의 결혼 생활 성공 법칙 내용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인류가 수많은 야생 동물들을 가축화하려고 노력했으나 가축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 중 단 하나만 맞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생 동물들을 가축화 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 지 자세히 살펴보자. 인류는 야생 동물 중 인간 사회에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동물들에게 가축화를 시도했다. 고기, 유제품, 비료, 운송 수단, 가죽과 털, 전쟁, 농사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물들이 가장 필요했다. 가축화가 가능한 야생 초식성 대형 포유류는 148종 정도로 압축되지만 실제로 가축화에 성공한 것은 겨우 14종이다. 이 중 양, 염소, 소, 돼지, 말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사육하고 있는 주요 5종이며 낙타, 알파카, 라마, 당나귀, 순록, 물소, 야크, 발리소, 인도소가 기타 9종이다.
모든 야생 동물들은 가축이 될 기회가 한 번 정도씩은 있었다. 위험할 수 있는 기린이나 코끼리는 물론이고 하이에나까지 시도했으며 불곰과 회색곰도 새끼를 잡아 길들여 보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야생 동물을 가축화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식성과 성장 속도가 효율적이어야 한다. 저자는 기막히게 맛있었던 사자 고기 햄버거를 먹어보았다고 한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무척 궁금한데 이처럼 아무리 맛있다고 하더라도 우선 육식이면 가축화를 하기 어렵다. 사자 고기를 맛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을 인간이 먹지 않고 사자의 먹이로 줘야 하겠는가? 그리고 코끼리처럼 많은 양의 고기를 인간에 제공해 줄 수 있지만 15년 동안이나 엄청난 양의 먹을 것을 제공해 줘야 하는 동물도 가축화를 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두 번째는 번식이 용이해야 한다. 가축화를 시도하면 감금 상태에서 무리 지어 살게 해야 하는데 번식이 어려운 치타나 비쿠냐 같은 종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치타는 사냥용으로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갖추어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는 1000마리나 기르며 가축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세 번째는 성격이 가축화에 알맞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회색곰이다. 곰 고기는 값비싼 별미이므로 가축화만 된다면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데 다 자라면 길러준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어서 포기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들소나 하마 역시 크고 빠르게 성장하여 좋은 점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포악한 행동으로 가축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얼룩말과 야생당나귀도 인간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동물이지만 사람을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습성과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적인 성격으로 결국 가축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네 번째는 신경이 예민하여 유독 겁이 많은 동물들이다. 가축화를 하기 위해서는 울타리로 감금해야 하는데 가두면 겁을 먹고 죽거나 난동을 부리고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하다가 결국 스스로 죽고 마는 가젤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젤이 예민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속 80km로 달리며 9m를 뛰는 가젤은 탐은 나지만 인간이 몰고 다니거나 다룰 수는 없는 동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특성을 가진 동물이어야 한다. 즉 무리를 지어 살아야 하며 우열 위계가 잘 발달해서 안정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갖춘 동물들은 가축화하기에 이상적이다. 반면 어느 정도 영역의 세력권을 가지려고 하면서 혼자 사는 동물들은 가축화할 수 없었다.
제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식량과 가축 그리고 문명은 대륙의 축, 즉 위도에 따라 확장되어 갔다. 지구에 있는 오대륙을 살펴보자. 가장 큰 유라시아는 남북의 길이보다 동서의 길이가 훨씬 길다. 그러나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동서의 길이보다 남북의 길이가 더 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문명의 발전은 식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승달 지역이 야생 식물을 작물화하고 동물을 가축화하는데 가장 용이한 기후였고 그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유라시아 지역이었고 마침 유라시아는 동서로 가장 긴 대륙이었다. 위도가 같은 지역이 넓게 펼쳐진 대륙은 유사한 기후조건 덕분에 가장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은 낮의 길이도 같고 계절의 변화, 기온과 강우량, 생식지나 생물 군계 등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동일한 위도에 위치해 있지만 기후가 다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도에 따라 기후가 결정된다.
유라시아는 결국 환경의 혜택을 보게 된 셈이다. 이로 인해 훗날 유럽과 아시아가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보다 앞설 수 있었고 지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왜 오세아니아,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나가지 못하고 유라시아인들에게 점령당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식량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간은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지구의 역사 역시 환경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보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며 합리적인 사고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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