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15 이릉대전(8): 장비, 관우 그리고 유비의 죽음 남군전투 후 손권과 유비의 관계는 멀어지고 형주의 관할권 문제를 놓고 심각한 군사적 충돌까지 갈 만큼 갈등이 심해졌다. 손권은 적벽대전의 공로를 내세우며 형주전체에 대한 권한을 오나라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비는 적벽대전은 공동작전으로 승리한 것이며 형주의 남부는 순수하게 촉의 힘으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갈등이 커져 둘 모두에게 손실이 갈 것을 우려하여 유비는 형주의 동쪽인 강하, 장사, 계양을 손권에게 주고 자신은 서쪽, 남군과 무릉, 영릉을 지배하였다. 이렇게 갈드의 문제는 일단락 되었지만.... 219년 유비는 위나라의 한중을 공격하기 위해 관우를 출정시켰다. 그런데 손권이 이 때가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유비의 영역을 공격하였다. 관우는 이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돌렸지.. 2022. 11. 21. 삼국지(7): 뛰는 주유 위에 나는 제갈량 유비와 손권은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이겨 패망의 위기를 넘기고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조조를 무너뜨리기엔 부족한 전투였다. 유비-손권 연합군은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이룬 후 형주의 남쪽으로 진군하였고 조조는 형주의 북족 남양에서 재정비를 하였다. 조조는 북쪽으로 양양, 신야, 여남, 소호를 이어 방어선을 연결하고 서쪽과 남쪽을 잇는 양양, 이릉, 남군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유비는 적벽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조자룡, 장비, 관우에게 각 북이릉, 오림, 화용에 주둔하게 한 후 강릉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연합군이었던 주유가 적벽에서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유비군이 어찌하여 강릉을 홀로 차지하려 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유비는 제갈량의 말을 빌려 주유의 군대로는 강릉의 조인과 .. 2022. 11. 21. 삼국지(6) : 적벽대전 장비와 조자룡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유비군은 한진에서의 전투에서도 지게 된다. 그리하여 한진에서 한수(강)를 이용하여 하구로 이동하였다. 조조군대는 한수를 따라 유비군을 쫓지 않고 강릉으로 내려가서 장강을 타고 적벽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적벽 가까이에 주둔하고 있던 손권에게 항복을 압박하였다. 손권과 주유가 항복한다면 유비군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었기에 이들을 설득하였다. 제갈량은 주유를 만나 "모래 속에 묻힌 부러진 창끝이 아직도 녹슬지 않았기에 녹을 닦고 씻어 보니 전왕조의 것이었네. 동풍이 주랑의 편이 아니었다면 봄이 무르익은 동작대로 이교(대교와 소교)가 잡혀갔겠지." 조조가 손권의 형 손책의 아내 대교와 주유의 아내 소교를 탐하고 있다고.. 2022. 11. 21. 삼국지 (5) : 장판교 전투 유비가 관도대전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조조의 군대에 패하고 후퇴하자 조조는 형주와 강남을 공략하고자 직접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형주의 태수 유종(유표의 후계자)은 겁을 먹고 조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자 100만 대군에 직접 맞설수 없었던 유비 또한 남쪽으로 피신하였다. 유비의 퇴각 소식을 들은 많은 백성들이 함께 피난하여 속도가 더디어졌다. 10만 명이 넘게 되자 하루에 몇 리 이동 못하게 되었지만 유비는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며 함께 간다. 조조는 유비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밤낮으로 300리를 달려 유비를 따라잡았다. 조조는 기동력이 없는 유비 군대를 간파하고 기마대를 선발진으로 유비군대에 파병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 .. 2022. 11. 21.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