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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시각15

삼국지(4) 박망전투- 10만VS5000명 - 10만 VS 5000명의 전투는 제갈량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 위해 과장된 전투로 보임. 기동력과 적은 수로 많은 수의 적을 이긴 전쟁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조금은 과장되었지만 제갈량의 우수한 지략이 펼쳐진 전투인 것만은 확실해 보임 - 유비는 201년 여남 전투에서 조조에게 대패한 후 근거지를 잃고 형주자사 유표에게 의지하였다. 이후 조조는 화북 평정 후 남쪽으로 진군하는데 부하 하후돈에게 10만군을 주면서 유비를 격파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때 제갈량은 관우와 장비에게 각 1,500명의 군사를 배치하여 예산과 안림 뒤쪽 산골에 매복해 있다가 박망성으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관평(관우의 양자)과 유봉(유비의 양자)에게 군사 500명 씩 주어 박망파 뒤에 매복하게 하였다. 이로써 사방을 포위.. 2022. 11. 18.
삼국지(3) 위, 촉, 오(천하삼분지계)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가 중원을 차지할 즈음, 유비는 의탁할 곳이 없어 도처를 떠돌아 다녔다.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하여 신야에 정착한 유비는 자신을 도와줄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때 사마휘가 제갈공명을 예를 갖추어 맞이할 것을 조언하였다. 사마휘는 유비에게 천하를 들여다 보는 눈은 있지만 천하를 얻을 군사가 없다는 조언을 함. 강대한 조조를 이기기는 어렵고 강동의 손권 또한 3대에 걸쳐 다져진 기반이 튼튼하여 막강하니 '촉'에 해당되는 지형적으로 중요한 요지인 형주와 익주를 얻어 천하를 3등분 한 다음 손권과 손을 잡고 조조를 상대해야 한다고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진언하였다. 형주의 주인인 유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킬 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조조와 손권이 손을 쓰고 있지 않으니 장군(유비)이 .. 2022. 11. 18.
삼국지 이야기 (1) 184년 중국 왕조의 부패와 민생의 고통이 심해지자 황건적이 난을 일으켰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많은 세력들이 일어나 황건적의 난을 막아내었다. 황건적의 난을 막아낸 이들의 세력이 커지게 되었고 동탁이 낙양으로 입성하여 환관을 주멸하고 황제의 폐위를 감행하려고 하였다. 이 때 동탁을 토벌하려는 세력이 일어났으며 189년 조조 역시 군사를 일으켜 황건적의 난과 동탁을 토벌하여 후한의 헌제를 옹립하였다. 그러나 실권은 이북을 원소에게, 서쪽은 조조가 가지고 있었고 이후 202년 조조는 원소에게 승리하여(관도대전) 화북지방까지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한편 유비는 제갈량의 협력을 얻어 형주를 손에 넣고 오의 손권과 동맹하여 조조의 남하를 막고 211년 익주 지역까지 차지하였다. 이후 손권은 유비를 ..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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